장재형목사, 사도 바울에게 배우는 제자도와 리더십의 정수

참된 교회의 지도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장재형(장다윗)목사는 언제나 똑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직함이나 카리스마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도의 길, 곧 삶으로 복음을 증언하는 길이다. 복음은 영웅담보다도 이름 없이 헌신한 제자들의 땀과 눈물을 타고 시대를 건너왔다. 그래서 리더십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이며, 리더를 세운다는 말은 곧 주님의 제자를 빚어 간다는 뜻이다. 이 관점에서 누가복음 9장은 제자도의 심장을 보여준다.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한 사람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대답은 가난 예찬이 아니라 소유에 묶이지 않는 자유의 선언이다. 내일의 안전망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는 자유, 가진 것에 붙잡히지 않고 부르심에 붙잡히는 자유가 제자의 첫걸음이라는 뜻이다. 장례와 같은 가장 중대한 도리 앞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는 부르심이 도리의 순서를 새로 정렬한다. 무엇이 더 급한가가 아니라 무엇이 더 영원한가를 기준으로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결단, 그것이 제자도를 오늘의 시간표로 번역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다”는 말씀은 각오가 아니라 방향을 묻는다. 과거의 미련이나 인간적인 정에 발목 잡히지 않고, 앞서 가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곧게 밭고랑을 내리듯 한 길을 오래 걷는 일, 그 꾸준함이 제자의 체력이다.

이 정신은 마태복음 10장에서 구체적인 길잡이를 얻는다. 여벌 옷과 지팡이조차 의지하지 말라는 파송의 지침은 무모함을 강요하려는 말이 아니다. “일꾼이 그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약속에 뿌리내린 현실적인 영성, 곧 하나님이 준비하신 공급을 신뢰하는 훈련이자 동시에 교회가 사역자의 필요를 정당하게 돌보아야 한다는 원리다. 장재형목사는 이 균형을 놓치지 않는다. 현장의 일꾼은 계산된 안전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배우고, 공동체는 그 신실하심의 통로로 부름 받았음을 자각한다. 그래서 사도행전 18장에서 바울이 보여준 장면은 제자도의 성숙을 증명한다. 고린도에서 아굴라·브리스길라와 함께 장막을 만들며 자비량으로 복음을 전하던 그는, 마게도냐 교회의 선교 헌금이 도착하자 곧장 생업을 멈추고 말씀 사역에 전념했다. 여기서 드러나는 자비량의 본뜻은 사역비를 영구히 거부하는 금욕이 아니라, 복음의 진전을 위해 형편을 분별하고 유연하게 적용하는 지혜다. 전방에서 복음을 전하는 이들과 후방에서 재정과 기도로 받쳐 주는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충성할 때, 복음은 더 멀리 더 맑게 흐른다. 장재형목사가 강조하는 전방·후방 선교의 협력은 바로 이 성경적 결을 오늘의 구조와 문화 속에 다시 짜 넣으려는 노력이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헌신할 필요는 없지만,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헌신해야 한다는 점에서다.

이 흐름을 따라 고린도전서 9장은 제자도와 리더십의 결을 가장 또렷하게 드러낸다. 바울은 사역자의 정당한 권리를 분명히 인정한다. 복음으로부터 생계를 얻을 권리, 가정을 꾸릴 권리, 손수 일하지 않을 권리, 군인·농부·목자의 비유와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는 율법의 원리를 통해 사역자가 복음으로 사는 것이 합당하다고 논증한다. 그러나 그는 즉시 다른 길을 택한다.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한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라.” 장재형목사가 주목하는 대목이 바로 여기다. 참된 리더는 권리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권리를 아는 만큼 스스로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다. 권리를 포기하는 행위는 체면을 위한 금욕이 아니라, 복음의 문턱을 낮추고 연약한 자들의 양심을 지키려는 사랑의 실천이다. 혹여 누군가 그를 돈 때문에 일한다고 오해할 가능성,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이 값비싼 소식처럼 보일 위험을 원천 차단하려고, 바울은 자비량의 수고를 기꺼이 떠맡았다. 그리고 그는 단호하게 못 박는다. “나는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않았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내 자랑이 헛되지 않게 하겠다.” 그에게 복음 전파는 선택이 아니라 부득불 해야 할 명령이었고, 상급은 외적 보상이 아니라 “값없이 전함” 그 자체였다. 장재형목사는 여기서 제자도의 척도를 제안한다. 무엇을 더 소유하느냐보다 무엇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느냐가 리더십의 깊이를 가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비량을 모든 사역자에게 획일적으로 요구하지는 않는다. 바울이 때로는 일했고 때로는 전념했던 것처럼, 제자도는 현실을 무시하는 낭만이 아니다. 교회의 충분한 후원이 사역의 집중도를 높이는 시기가 있고, 자비량이 복음의 신뢰성을 증언하는 시기가 있다. 장재형목사가 제시하는 질문은 단순하다. 이 선택이 복음의 전진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가, 연약한 자들에게 걸림돌이 되는가, 공동체의 질서와 재정을 무너뜨리지 않는가. 이 질문에 따라 재정은 투명하고 단순해야 하며, 목적 지정 헌금과 일반 헌금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보고는 신뢰를 낳을 정도로 구체적이어야 한다. “일꾼이 그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원리를 절차로 번역해 사역자 지원을 은혜의 시혜나 눈치 보기의 대상이 아니라 합당한 질서로 정착시키는 일도 중요하다. 전임 사역과 자비량 사역은 우열이 아니라 형태의 차이이며, 교회는 각각이 복음에 더 유익하도록 코칭하고, 전환이 필요할 때 지혜롭게 돕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개인의 차원에서는 제자도의 언어를 일상의 문법으로 바꾸어야 한다. 무소유의 자유는 수입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소유에 묶이지 않는 마음의 훈련이다. 내가 없으면 불안한 것들이 무엇인지, 그것이 사명 수행을 가로막는지, 그 대상들에 대해 실제로 하나님께 신뢰의 행동을 했는지 점검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우선순위의 재편은 시간 관리에서 드러난다. 달력은 신앙고백의 거울이기에, 말씀과 기도, 제자 양육과 현장 전도의 시간을 사무처럼 배정하고, 성과를 숫자보다 사람의 변화로 기록하는 훈련이 요구된다. 뒤돌아보지 않는 헌신은 관계에서 증명된다. 리더의 말은 약속이 되고, 약속은 곧 길이 된다. 힘들다고 관계를 쉽게 갈아치우지 않고 오래 참고 다시 시작하는 끈기가 공동체에 안전을 준다. 자비량의 영성은 직업과 소명의 통합에서 가장 빛난다. 직장은 생계 수단이 아니라 파송지이고, 전문성은 복음을 위한 언어다. 바울에게 장막은 복음의 가림막이 아니라 복음의 다리였듯, 오늘의 전문가·자영업자·학생·창업자는 각자의 현장에서 성실과 탁월함으로 복음의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

디지털 시대의 제자도에 대한 경계도 필요하다. 정보의 과잉은 결단의 결핍을 낳는다. 많은 콘텐츠를 소비해도 한 가지를 오래 순종하지 않으면 영적 근육은 자라지 않는다. 장재형목사는 “뒤돌아보지 않는 헌신”을 온라인 습관에도 적용하라고 권면한다. 말씀을 스크롤로 흘려보내지 말고 삶의 규칙으로 새겨 넣으라. 공동체는 빠른 캠페인보다 느린 동행을 귀히 여기고, 사람을 프로젝트로 다루지 말고 사랑으로 낳아 말씀으로 키워야 한다. 리더는 말의 밀도가 아니라 삶의 일관성으로 신뢰를 얻는다. 약속한 작은 일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 결국 큰일도 맡을 수 있다.

결국 핵심은 권리의 신중한 사용이다. 권리를 모르는 순진함은 오래가지 못하고, 권리를 남용하는 미성숙은 공동체를 상하게 한다. 그러나 권리를 복음의 기준으로 절제하는 성숙은 교회를 세운다. 바울은 합법의 선에서 멈추지 않고 복음의 아름다움으로 나아갔다. 오늘 우리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것이 내게 합법한가를 넘어, 형제에게 유익한가, 복음에 아름다운가. 리더는 합법에서 아름다움으로 이동하는 사람이며, 그 이동의 에너지는 사랑이다. 그래서 참된 지도자는 제자다. 세상의 기준을 뒤집는 자유로, 영원의 가치를 현재에 우선하는 지혜로, 뒤돌아보지 않는 충성으로, 그리고 복음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권리를 제한하는 사랑으로 자신을 세운다. 그런 리더를 통해 제자가 또 다른 제자를 낳고, 교회는 권력으로가 아니라 생명으로 승계된다. 누가복음 9장의 자유, 마태복음 10장의 신뢰, 사도행전 18장의 자비량, 고린도전서 9장의 권리 포기는 한 줄기 강물처럼 합류하여 오늘 우리의 교회로 흘러든다. 우리가 이 부르심에 응답해 각자의 자리에서 전방이든 후방이든 충성으로 설 때, 복음은 값없이, 그러나 결코 싸구려가 아닌 존귀함으로 다시 빛날 것이다. 그리고 그 길 자체가 우리의 상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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