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혹독한 인생의 겨울, 당신의 성전에는 ‘따뜻한 겉옷’이 준비되었는가, 장재형 목사(Olivet University)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계절입니다. 계절의 순환에 따른 겨울뿐만 아니라, 우리네 인생에도 예고 없이 혹독한 겨울이 찾아오곤 합니다. 경제적 결핍, 관계의 단절, 혹은 질병이라는 이름의 눈보라가 몰아칠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몸을 피할 곳을 찾습니다. 2천 년 전, 로마의 차가운 지하 감옥에 갇혀 있던 노사도 바울 역시 다가오는 겨울의 냉기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며 두 가지를 부탁합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올 때에 겉옷을 가지고 오고.” 죽음을 목전에 둔 위대한 전도자가 구한 것은 거창한 신학적 명제가 아니라, 시린 몸을 덮을 낡은 겉옷 한 벌과 사람의 온기였습니다.

폭풍우 치는 밤, 영혼이 깃들 유일한 피난처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불후의 명작 『레미제라블』에는 성전(聖殿)의 본질을 꿰뚫는 명장면이 등장합니다. 19년의 감옥살이를 마치고 세상에 나왔으나, 전과자라는 낙인 때문에 그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추위와 배고픔에 떨던 장발장. 그가 마지막으로 문을 두드린 곳은 미리엘 주교의 사택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문이 닫혔을 때, 주교는 그를 맞아들이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곳은 나의 집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집입니다. 이 문은 들어오는 사람에게 이름을 묻지 않고, 오직 그에게 아픔이 있는지를 물을 뿐입니다.”

이 감동적인 장면은 장재형 목사가 전한 역대하 7장과 스가랴 14장의 설교 메시지와 깊게 공명합니다. 장재형 목사는 성전을 단순히 건물의 개념으로 축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잠들었던 벧엘의 광야처럼, ‘하늘과 땅이 만나고 하나님과 인간이 교제하는 거룩한 자리’가 바로 성전임을 신학적 통찰로 풀어냈습니다. 솔로몬에게 약속하신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날 환난이라는 폭풍우 속에 있는 우리에게 성전이 단순한 종교 시설이 아닌, 영혼의 유일한 피난처임을 역설합니다.

세상이 펜데믹과 경제 위기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휘청거릴 때, 교회가 감당해야 할 몫은 무엇일까요? 장재형 목사는 환난의 때일수록 성전의 본질인 ‘만민이 기도하는 집’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미리엘 주교가 장발장에게 내어준 것이 단순한 잠자리와 음식이 아니라 잃어버린 인간의 존엄성이었던 것처럼, 교회는 세상에서 상처 입고 밀려난 이들이 들어와 하나님을 대면하고 치유받는 영적 요새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하늘 문을 여는 열쇠이자, 고통받는 땅을 고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오르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차가운 감옥 바닥을 녹이는 화해의 온기

그러나 성전의 기능은 피난처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장재형 목사는 디모데후서 4장의 말씀을 통해, 성전 안을 채워야 할 진정한 온기는 ‘사랑과 화해’임을 묵직하게 전합니다. 바울이 감옥에서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말한 대목은 실로 놀라운 반전입니다. 마가는 과거 전도 여행 도중 힘들다는 이유로 무단이탈하여 바울에게 큰 실망을 안겼던 인물입니다. 그로 인해 바울은 동역자 바나바와 결별하는 아픔까지 겪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마지막 겨울 앞에서, 바울은 마가를 용서하고 그를 다시 “나의 일에 유익한 자”로 인정하며 초청합니다.

이 극적인 화해야말로 복음이 가진 위대한 능력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바울이 요청한 ‘겉옷’이 육체의 추위를 막는 도구였다면, 마가를 부른 것은 영혼의 추위를 녹이는 사랑의 행위였음을 통찰합니다. 빌레몬에게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를 형제로 받아들이게 한 것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성경 묵상을 통해 우리는 깨닫습니다. 아무리 웅장한 건물과 화려한 예식이 있어도, 그 안에 용서와 화해, 그리고 형제를 향한 뜨거운 사랑이 없다면 그곳은 냉기 가득한 돌무더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혹독한 겨울을 이기는 힘은 시스템이 아니라,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의 겉옷에서 나옵니다.

기도의 무릎으로 마중 나가는 영적인 봄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전쟁과 기근, 갈등과 분열의 소식을 접하며 살아갑니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긴 겨울밤을 지나는 듯합니다. 그러나 장재형 목사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는 스가랴의 예언처럼 환난 날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피할 길을 내시며, 우리가 기도의 무릎을 꿇을 때 그 길은 열린다고 확신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환난의 시간 동안 무엇을 준비하느냐입니다.

우리의 성전은 지금 따뜻합니까? 혹시 누군가를 향한 미움과 정죄로 인해 냉골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장재형 목사의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환난을 통과하는 지혜는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와, 이웃을 향한 구체적인 화해입니다. 우리가 서로의 마가(Mark)가 되어주고, 서로에게 오네시모가 되어줄 때, 교회는 비로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주는 참된 성전으로 완성됩니다.

바울은 감옥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갇혀 있었지만, 그의 영혼은 은혜 안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웠습니다. 그는 다가올 죽음이라는 겨울 너머에 있는 영원한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이 믿음의 눈이 필요합니다. 상황이 어렵고 현실이 춥더라도, 사랑의 겉옷을 챙겨 입고 기도의 불을 지피십시오. 하나님은 그 기도와 사랑 위에 반드시 응답하시며, 마침내 우리 삶에 찬란한 영적 봄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대를 관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위로이자 약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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