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专栏】严酷人生的寒冬:你的圣殿里,是否预备了“一件温暖的外衣”?- 张大卫牧師 (Olivet University)

这是寒风钻入衣领的季节。冬天不仅存在于四时更替之中,在我们的人生里,也常常会毫无预警地迎来严酷的寒冬。当经济的匮乏、关系的断裂,或名为疾病的暴风雪席卷而来时,人本能地想要寻找一个可以躲避的地方。两千年前,被囚在罗马冰冷地下牢狱中的老使徒保罗,也同样切身感受着冬日逼近的寒意。他在给挚爱的门徒提摩太写信时,提出了两样请求:“你要赶紧到我这里来……来的时候要把外衣带来。”这位直面死亡的伟大传道人所求的,并非宏大的神学命题,而是一件能遮盖刺骨寒冷的旧外衣,以及人所能带来的温度。

风暴之夜,灵魂唯一可栖的避难所
法国文豪维克多·雨果的不朽名作《悲惨世界》中,有一幕直指“圣殿”本质的经典场景:服刑十九年后重回世间,却因“前科犯”的烙印而处处被拒、在饥寒交迫中颤抖的冉·阿让。最后,他叩响的是米里哀主教的住所之门。当世上一切的门都关上时,主教接纳了他,并这样说道:“这里不是我的家,而是耶稣基督的家。这扇门不问进来的人叫什么名字,只问他是否带着伤痛。”

这段动人的场景,与张大卫牧师讲解《历代志下》第7章与《撒迦利亚书》第14章的信息产生了深刻共鸣。张大卫牧师并未把圣殿简化为“建筑物”的概念;他以神学洞见阐明:圣殿正如雅各在伯特利旷野枕着石头入睡之处——那是“天地相接、神与人相交的圣洁之地”。神对所罗门的应许——“我的眼、我的心也必常在那里”——正是在患难风暴之中向我们宣告:圣殿并非单纯的宗教设施,而是灵魂唯一的避难所。

当世界在疫情与经济危机的巨浪前摇摇欲坠时,教会当承担怎样的使命?张大卫牧师强调:越是患难之时,越要恢复圣殿本质——“万民祷告的殿”的身份。就像米里哀主教给冉·阿让的并不只是床铺与食物,而是他失落已久的人之尊严;同样,教会也应成为属灵的堡垒,使在世上受伤、被排挤的人能够进来与神相遇并得医治。因为祷告既是开启天门的钥匙,也是把神医治痛苦大地之能力引入人间的通道。

融化冰冷牢狱地面的和解之温
然而,圣殿的功能并不止于避难所。张大卫牧师借着《提摩太后书》第4章郑重指出:真正应当充满圣殿的温度,是“爱与和解”。保罗在狱中对提摩太说“把马可带来”,实在是一个令人惊讶的反转。马可曾在宣教旅途中因艰难而擅自离开,使保罗极其失望;甚至因此,保罗与同工巴拿巴经历了分离的痛苦。然而在生命最后的寒冬面前,保罗选择饶恕马可,并再次承认他是“于我有益处的人”,把他邀请到自己身边。

这种戏剧性的和解,正是福音伟大的能力。张大卫牧师洞察:若“外衣”是抵挡肉身寒冷的工具,那么呼唤马可,就是融化灵魂寒意的爱之行动。同样,保罗劝腓利门接纳逃奴阿尼西母、把他当作弟兄,也是同一脉络的见证。借着圣经默想,我们会明白:无论建筑多么宏伟、仪式多么华丽,若其中没有饶恕、和解,以及对弟兄火热的爱,那地方也不过是一堆冰冷的石头。战胜严冬的力量,不在于系统与规模,而在于那能遮盖彼此过犯的“爱的外衣”。

以祷告的膝盖迎接属灵的春天
今天,我们仍在战争、饥荒、冲突与分裂的消息中度日,仿佛正走过一场看不见尽头的漫长冬夜。然而张大卫牧师并不绝望。他确信:正如撒迦利亚的预言所启示,患难之日神必定为人开出逃生之路,而当我们屈膝祷告,那道路便会开启。关键在于:在那段患难的时间里,我们究竟预备了什么。

我们的圣殿如今温暖吗?会不会因对某人的怨恨与定罪而变成冷冰冰的空壳?张大卫牧师的信息十分清晰:穿越患难的智慧,是向神发出的迫切祷告,也是向邻舍伸出的具体和解。当我们彼此成为对方的“马可”(Mark),也彼此成为对方的“阿尼西母”时,教会才得以完成为真正的圣殿——一个能赐下世人无法给予之平安的所在。

保罗虽被困在监狱这有限的空间里,他的灵却在恩典中比任何人都自由;因为他望见了那寒冬般的死亡之后、为他存留的永恒公义冠冕。我们也需要这样的信心之眼。即使处境艰难、现实寒冷,也请披上爱的外衣,点燃祷告的火。神必在这祷告与爱之上回应,终将把灿烂的属灵春天赐给我们的生命。这正是穿越时代、临到我们的上帝安慰与应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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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혹독한 인생의 겨울, 당신의 성전에는 ‘따뜻한 겉옷’이 준비되었는가, 장재형 목사(Olivet University)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계절입니다. 계절의 순환에 따른 겨울뿐만 아니라, 우리네 인생에도 예고 없이 혹독한 겨울이 찾아오곤 합니다. 경제적 결핍, 관계의 단절, 혹은 질병이라는 이름의 눈보라가 몰아칠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몸을 피할 곳을 찾습니다. 2천 년 전, 로마의 차가운 지하 감옥에 갇혀 있던 노사도 바울 역시 다가오는 겨울의 냉기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며 두 가지를 부탁합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올 때에 겉옷을 가지고 오고.” 죽음을 목전에 둔 위대한 전도자가 구한 것은 거창한 신학적 명제가 아니라, 시린 몸을 덮을 낡은 겉옷 한 벌과 사람의 온기였습니다.

폭풍우 치는 밤, 영혼이 깃들 유일한 피난처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불후의 명작 『레미제라블』에는 성전(聖殿)의 본질을 꿰뚫는 명장면이 등장합니다. 19년의 감옥살이를 마치고 세상에 나왔으나, 전과자라는 낙인 때문에 그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추위와 배고픔에 떨던 장발장. 그가 마지막으로 문을 두드린 곳은 미리엘 주교의 사택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문이 닫혔을 때, 주교는 그를 맞아들이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곳은 나의 집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집입니다. 이 문은 들어오는 사람에게 이름을 묻지 않고, 오직 그에게 아픔이 있는지를 물을 뿐입니다.”

이 감동적인 장면은 장재형 목사가 전한 역대하 7장과 스가랴 14장의 설교 메시지와 깊게 공명합니다. 장재형 목사는 성전을 단순히 건물의 개념으로 축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잠들었던 벧엘의 광야처럼, ‘하늘과 땅이 만나고 하나님과 인간이 교제하는 거룩한 자리’가 바로 성전임을 신학적 통찰로 풀어냈습니다. 솔로몬에게 약속하신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날 환난이라는 폭풍우 속에 있는 우리에게 성전이 단순한 종교 시설이 아닌, 영혼의 유일한 피난처임을 역설합니다.

세상이 펜데믹과 경제 위기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휘청거릴 때, 교회가 감당해야 할 몫은 무엇일까요? 장재형 목사는 환난의 때일수록 성전의 본질인 ‘만민이 기도하는 집’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미리엘 주교가 장발장에게 내어준 것이 단순한 잠자리와 음식이 아니라 잃어버린 인간의 존엄성이었던 것처럼, 교회는 세상에서 상처 입고 밀려난 이들이 들어와 하나님을 대면하고 치유받는 영적 요새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하늘 문을 여는 열쇠이자, 고통받는 땅을 고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오르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차가운 감옥 바닥을 녹이는 화해의 온기

그러나 성전의 기능은 피난처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장재형 목사는 디모데후서 4장의 말씀을 통해, 성전 안을 채워야 할 진정한 온기는 ‘사랑과 화해’임을 묵직하게 전합니다. 바울이 감옥에서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말한 대목은 실로 놀라운 반전입니다. 마가는 과거 전도 여행 도중 힘들다는 이유로 무단이탈하여 바울에게 큰 실망을 안겼던 인물입니다. 그로 인해 바울은 동역자 바나바와 결별하는 아픔까지 겪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마지막 겨울 앞에서, 바울은 마가를 용서하고 그를 다시 “나의 일에 유익한 자”로 인정하며 초청합니다.

이 극적인 화해야말로 복음이 가진 위대한 능력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바울이 요청한 ‘겉옷’이 육체의 추위를 막는 도구였다면, 마가를 부른 것은 영혼의 추위를 녹이는 사랑의 행위였음을 통찰합니다. 빌레몬에게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를 형제로 받아들이게 한 것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성경 묵상을 통해 우리는 깨닫습니다. 아무리 웅장한 건물과 화려한 예식이 있어도, 그 안에 용서와 화해, 그리고 형제를 향한 뜨거운 사랑이 없다면 그곳은 냉기 가득한 돌무더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혹독한 겨울을 이기는 힘은 시스템이 아니라,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의 겉옷에서 나옵니다.

기도의 무릎으로 마중 나가는 영적인 봄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전쟁과 기근, 갈등과 분열의 소식을 접하며 살아갑니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긴 겨울밤을 지나는 듯합니다. 그러나 장재형 목사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는 스가랴의 예언처럼 환난 날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피할 길을 내시며, 우리가 기도의 무릎을 꿇을 때 그 길은 열린다고 확신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환난의 시간 동안 무엇을 준비하느냐입니다.

우리의 성전은 지금 따뜻합니까? 혹시 누군가를 향한 미움과 정죄로 인해 냉골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장재형 목사의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환난을 통과하는 지혜는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와, 이웃을 향한 구체적인 화해입니다. 우리가 서로의 마가(Mark)가 되어주고, 서로에게 오네시모가 되어줄 때, 교회는 비로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주는 참된 성전으로 완성됩니다.

바울은 감옥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갇혀 있었지만, 그의 영혼은 은혜 안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웠습니다. 그는 다가올 죽음이라는 겨울 너머에 있는 영원한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이 믿음의 눈이 필요합니다. 상황이 어렵고 현실이 춥더라도, 사랑의 겉옷을 챙겨 입고 기도의 불을 지피십시오. 하나님은 그 기도와 사랑 위에 반드시 응답하시며, 마침내 우리 삶에 찬란한 영적 봄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대를 관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위로이자 약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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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1장 강해 (장재형목사)

장재형목사는 부활을 향한 신앙이 가장 뜨겁게 시험대에 오르는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주께서 다시 사셨다”는 강렬한 고백이 지나간 뒤에 찾아온다고 한다. 기적 같은 사건은 일단락되었으나 일상은 여전히 반복되고, 뜨거웠던 예배의 여운 뒤에 마주하는 현실은 여전히 척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21장은 바로 이러한 신앙적 공백기에 던져진 중대한 서사다. 흔히 이 대목을 본문의 끝에 붙은 부록 정도로 여기기 쉽지만, 사실 이곳은 부활이라는 결론이 어떻게 성도의 삶으로 구체화되는지를 보여주는 핵심적인 신학적 마침표라 할 수 있다. 요한복음 20장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얻게 되는 생명을 선포했다면, 마지막 21장은 그 생명을 얻은 자들이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어떤 삶의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그리고 한때 실패했던 제자가 어떻게 다시금 사명의 길로 복귀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장재형 목사가 이 장을 ‘전도와 목양의 일치’라는 관점에서 끊임없이 조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활은 머리로 동의하는 정답이 아니라 공동체를 움직이는 실재적인 에너지이며, 그 에너지는 구체적인 헌신과 책임감을 통해 증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디베랴 호숫가의 새벽 풍경은 방향을 잃은 제자들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일곱 제자가 밤을 지새우며 그물을 던졌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온 장면은 단순한 조업의 실패가 아니라, 주님의 부재 앞에서 무기력하게 과거의 익숙한 삶으로 회귀해버린 인간의 한계를 드러낸다.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다”는 베드로의 말은 상실감에 빠진 이가 붙잡을 수 있는 최후의 질서였을지도 모른다. 위대한 부활의 소식 직후에 나타난 이 정체와 지연의 시간은 매우 인간적이기에 오히려 성경의 진실성을 뒷받침한다. 이때 부활하신 주님은 거룩한 성전이 아니라, 고단함과 공허함이 교차하는 새벽 노동의 현장으로 직접 찾아오신다. 그리고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는 지극히 일상적인 질문을 던지신다. 이는 제자들 스스로 자신들의 한계와 결핍을 입술로 고백하게 만듦으로써,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가 침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과정이다.

주님의 명령은 명쾌했다. 배의 오른편에 그물을 내리라는 것이다. 장재형 목사는 이 대목을 인간의 관성과 확신을 꺾고 주의 뜻에 삶의 방향을 일치시키는 ‘방향성’의 전환으로 해석한다. 평생 호수에서 뼈가 굵은 어부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버리고 말씀에 의지해 그물을 던지는 행위는 단순한 시도가 아닌 전적인 순종이었다. 그 결과로 나타난 153마리의 물고기는 순종이 빚어내는 풍성한 새 세계의 증거다. 이 구체적인 숫자는 이 사건이 신화적인 환상이 아닌 실제적인 기억임을 방증하며, 동시에 모든 민족을 품는 교회의 사명을 시각적으로 암시한다. 여기서 요한은 수많은 수확 앞에서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록하며, 복음의 그물이 지닌 견고함을 강조한다. 공동체가 성장하고 확장될 때 겪는 분열과 와해의 두려움에 대해, 주님은 말씀의 충분성이 교회를 지탱하고 있음을 확신시켜 주신다. 교회의 역량은 인적 조직의 치밀함이 아니라 오직 찢어지지 않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 위에 세워지는 것이다.

초대교회가 물고기 상징인 ‘익투스’를 통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했던 전통 역시 이러한 맥락과 닿아 있다. 박해의 위협 속에서 그들은 물고기 형상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우리는 구주 예수의 이름으로 산다”는 결의를 다졌다. 153이라는 숫자를 두고 어거스틴은 율법과 성령의 은혜가 결합된 완전한 구원의 수로 해석하는 신학적 통찰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러한 신비로운 사건은 라파엘로의 명화 ‘기적의 고기잡이’를 통해 시각화되어 우리에게 더 깊은 경외를 선사한다. 거친 파도와 흔들리는 배 위에서 제자들이 마주한 신비는 일상과 성스러움이 만나는 지점을 포착해낸다. 주님은 이처럼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삶의 표면 위로 다가오시어, 구체적인 순종의 실천을 통해 실패의 기록을 승리의 선교 서사로 다시 쓰게 하신다.

하지만 요한복음 21장의 진정한 백미는 결과물로서의 물고기가 아니라, 제자들을 위해 미리 숯불을 피우고 음식을 준비하신 주님의 ‘선행적 은혜’에 있다. 제자들이 육지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마련되어 있던 식탁은 신앙의 주도권이 인간의 성취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준비하심에 있음을 증명한다. 장재형 목사가 전도와 목양을 떼어놓을 수 없는 하나로 강조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전도가 주님이 예비하신 생명의 식탁으로 이웃을 초대하는 행위라면, 목양은 그 식탁에 앉은 이들이 은혜의 온기 속에 머물 수 있도록 돕는 사랑의 돌봄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역의 기초는 인간의 기획이 아니라 주님이 이미 베풀어 놓으신 은혜의 거처를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식사 후에 이어지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는 실패한 영혼을 향한 완전한 회복의 리듬을 보여준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세 번의 질문은 베드로의 과거 부인을 들추는 정죄가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랑을 치유하여 사명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이다. 여기서 사랑은 감정적 고백을 넘어 “내 양을 먹이라”는 실천적 책임으로 구체화된다. 사랑의 진정성은 결국 연약한 영혼을 돌보는 수고를 통해 검증된다는 것이다. 밖으로는 복음의 그물을 던지는 전도의 사명에 충실하고, 안으로는 양 떼를 세심히 살피는 목양의 책임에 매진할 때 공동체는 비로소 온전한 균형을 이룬다. 베드로의 조심스럽고 겸손한 대답 위에 사명이 얹혀졌듯, 사역의 길은 완벽한 자가 아닌 주님의 용서를 힘입어 다시 일어서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은혜의 길이다.

나아가 주님은 타인의 운명이나 마지막 때의 시기에 집착하기보다 “너는 나를 따르라”는 명확한 명령에 집중할 것을 요구하신다. 이는 불필요한 사변에 에너지를 소모하는 대신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양들을 돌보는 현재의 책임에 충실하라는 영적 권고다. 참된 종말론적 신앙은 현실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신뢰하며 오늘 더 정직하게 복음을 전하고 더 성실하게 사랑을 나누는 삶으로 나타난다. 또한 이러한 신앙의 유산은 다음 세대에게 견고한 성경적 세계관으로 전수되어야 한다. 개인의 감정과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 나라 중심의 거대한 서사 안에서 자신의 삶을 해석할 수 있을 때, 청년들과 다음 세대들은 포스트모던의 파도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오른편’으로 그물을 던지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

결국 요한복음 21장은 부활을 목격한 교회가 지향해야 할 실천적 지도를 그려준다. 교회는 실패한 이들의 모임이지만 결코 실패에 주저앉지 않으며, 회복의 은혜를 입어 다시 세상으로 파송되는 곳이다. 또한 자신의 능력으로 성과를 내는 조직이 아니라 주님이 차려주신 은혜의 식탁 위에서 성찬적 감사를 누리는 사명자들의 모임이다. 장재형 목사의 강해가 우리에게 던지는 최종적인 질문은 명료하다. 우리는 누구의 음성을 따라 그물을 던지고 있으며, 우리의 사랑은 구체적인 목양의 자리에서 어떻게 증명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대답은 복잡하지 않다. 주의 말씀대로 방향을 꺾고, 맡겨진 양들을 사랑으로 돌보며, 묵묵히 주님의 뒤를 따르는 것이다. 복음의 그물은 여전히 찢어지지 않을 만큼 강하며 주님의 은혜는 충분하기에, 교회는 다시금 확신을 가지고 오른편을 향해 그물을 던져야 한다. 그것이 요한복음 21장을 오늘을 살아가는 교회의 생생한 실천서로 만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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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6장 해설 – 장재형목사

장다윗(Olivet University 설립)목사의 설교가 지니는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성경을 단순한 지식의 집합으로 소비하지 않고 역사적 사건의 체온과 공동체의 호흡을 현재의 교회 안으로 되살린다는 데 있다.

그의 고린도전서 16장 해설을 따라가다 보면, 흔히 “마지막 장”이라는 이유로 대수롭지 않게 넘겨 왔던 본문이 사실은 교회의 정체성과 실천을 가늠하는 핵심 장면임을 새삼 인식하게 된다. 방언과 예언의 질서, 부활이라는 거대한 신앙 고백을 지나, 재정 후원과 이동 계획, 사람들의 이름과 인사로 마무리되는 서신의 결말은 결코 우연적 배치가 아니다. 이는 복음이 추상적 개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약속과 일정, 신뢰와 물질, 존중과 눈물이 얽힌 현실의 언어로 구현되어야 함을 선포하는 선언에 가깝다. 장재형목사는 이 대목에서 고린도전서 16장을 ‘신앙의 진정성을 시험하는 현장’으로 읽도록 이끈다. 교리가 분명하다면 반드시 책임 있는 실천으로 이어져야 하고, 실천이 살아 있다면 진리의 방향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통합적 원리가 이 마지막 장에 응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6장의 서두를 여는 주제는 예루살렘 교회를 향한 연보다. 여기서 연보는 즉흥적인 감정의 산물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는 조직된 사랑의 리듬을 뜻한다. 바울이 요청한 것은 일회성 헌금이 아니라 지속적 책임이었다. 헬라어 표현이 암시하듯, 이는 충동적 시혜가 아니라 계획된 모금이며 공동체적 참여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다른 지역 교회들과 동일한 원칙 아래, 매주 첫날마다 각자의 형편에 따라 미리 준비하도록 안내한다. 이 지침에는 섬세한 목회적 통찰이 담겨 있다. 첫째, 갑작스러운 부담을 제거한다. 바울이 도착한 후 분위기에 휩쓸려 모금하는 방식은 감정을 소진시키고 공동체를 불필요한 압박에 빠뜨릴 수 있다. 둘째, 선한 습관을 형성한다. 사랑은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반복된 훈련을 통해 성품으로 자리 잡는다. 셋째, 형편에 따른 참여라는 공정성이 있다. 동일한 액수를 강요하지 않되, 모두가 참여함으로써 한 몸의 책임을 나누게 한다. 장재형목사는 이 지점에서 교회의 재정이 단순한 운영 기술이 아니라 공동체를 성숙하게 하는 실천 신학의 장이라고 강조한다.

예루살렘 교회의 궁핍은 신약 전반에 흩어진 기록을 통해 실제적 상황이었음이 확인된다. 초대교회는 이상화된 공동체가 아니라, 기근과 가난, 사회적 불안 속에서 서로의 생존을 책임져야 했던 현실의 공동체였다. 그렇기에 바울이 놓은 연대의 다리는 더욱 의미가 선명해진다. 이방 교회가 예루살렘을 돕는 행위는 도덕적 우월의 표현이 아니라, 복음 안에서 한 가족이 된 교회가 서로에게 진 사랑의 빚을 갚는 행위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한 ‘영적 빚’은 죄책이 아니라 감사로 표현되는 연대의 윤리다. 장재형목사의 해설은 이 연대를 감상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그는 교회가 교회다움을 지키기 위해서는 추상적 고백이 아니라 구체적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루살렘의 눈물이 고린도의 지갑을 흔들고, 고린도의 풍요가 예루살렘의 생명을 잇는 끈이 된다. 교회는 이렇게 서로의 결핍을 통해 서로를 인식하는 법을 배운다.

이 본문을 오늘의 교회에 적용하면, 연보는 단순히 구제 헌금 항목으로 축소될 수 없다. 그것은 교회가 물질을 어떻게 다루는지, 곧 청지기 정신과 투명성, 사랑의 동기를 비추는 거울이다. 바울의 연보 처리 방식은 매우 신중하다. 그는 헌금을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지 않고, 공동체가 인정한 이들을 세워 편지와 함께 파송한다. 필요하다면 자신도 동행할 수 있음을 말하지만, 그 역시 공동체적 절차 안에 둔다. 이는 재정이 영적 권위라는 명목으로 사유화되는 것을 방지하는 강력한 장치다. 장재형목사는 이 대목을 통해 현대 교회가 재정을 얼마나 투명하게 관리하며, 어떤 방식으로 신뢰를 쌓고 있는지를 성찰하게 한다. 헌금의 액수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사랑과 진실의 질서 속에서 다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재정은 교회의 혈류와 같다. 흐름이 막히면 공동체 전체가 병들 수 있다. 유다의 비극이 상징하듯, 돈은 숫자를 넘어 인격을 드러내는 시험대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바울의 조심스러운 절차는 재정을 선교의 연료이자 거룩의 훈련장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라 할 수 있다.

장재형목사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개념은 정통, 곧 오소독스의 감각이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정통은 박물관에 전시된 교리가 아니라 삶을 살리는 진리의 좌표다. 교리가 분명할수록 사랑은 방향을 잃지 않는다. 반대로 사랑의 실천이 사라지면 교리는 공허한 문장으로 굳어진다. 고린도전서 16장은 이 두 축이 실제 삶에서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보여 주는 매우 현실적인 신학 텍스트다. 바울은 부활을 선포한 직후 연보를 말한다. 이는 부활 신앙이 내세에 대한 낙관이 아니라, 현재의 삶에서 사랑을 실행할 이유임을 드러낸다. 부활은 미래의 약속이면서 동시에 오늘의 윤리다. 장재형목사는 이 연결을 통해 교회가 신학적 깊이를 추구하는 만큼 사회적 책임과 구체적 돌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후 바울은 연보 이야기와 함께 자신의 선교 여정을 공유한다. 마게도냐를 거쳐 고린도로 향하려는 계획, 겨울을 보낼 가능성, 에베소에 머무는 이유, 그리고 “큰 문이 열렸으나 대적도 많다”는 고백은 사역이 낭만이 아니라 현실의 전투임을 보여 준다. 선교는 영감만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머물 때와 떠날 때, 열리는 때와 닫히는 때를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계획은 믿음의 반대가 아니라 믿음의 표현이다. 장재형목사는 여기서 교회 운영의 균형 감각을 읽어 낸다. 열정만 남으면 쉽게 소진되고, 구조만 남으면 생명력이 사라진다. 바울은 성령의 인도를 신뢰하면서도 구체적인 일정과 가능성을 명확히 한다. 이는 오늘의 교회가 영적인 언어로 현실을 덮어 버리는 태도를 경계하게 만든다.

고린도전서 16장에는 유난히 많은 이름이 등장한다. 디모데, 아볼로, 스데바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편지의 끝을 채운다. 이는 교회가 제도 이전에 관계임을 보여 준다. 바울은 젊은 사역자 디모데가 두려움 없이 사역하도록 배려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는 세대 교체가 늘 긴장과 오해를 동반한다는 현실을 전제한다. 장재형목사는 이 장면을 통해 교회가 다음 세대를 어떻게 대하는지, 한 사람의 사명이 공동체의 언어와 태도에 의해 얼마나 좌우되는지를 묻는다. 존중은 단순한 예절이 아니라 사역 생태계를 지탱하는 영적 기반이다. 또한 아볼로에 대한 언급은 특정 인물 의존의 위험을 성찰하게 한다. 교회가 원한다고 해서 사역자가 항상 즉시 응답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사람을 우상화하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스데바나의 집에 대한 언급은 가정교회의 생생한 흔적을 보여 준다. 예배당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대, 한 가정의 헌신은 곧 교회의 공간이자 환대의 문이었다. 바울은 그들이 성도들을 섬기기로 결단했다고 말하며, 그런 이들에게 순복하고 존중하라고 권면한다. 이는 섬김이 단순한 봉사를 넘어 공동체를 살리는 영적 직분임을 보여 준다. 장재형목사는 이 장면을 오늘의 가정과 일상으로 확장한다. 교회는 주일 예배당 안에서만 완성되지 않는다. 식탁과 거실, 직장과 거리에서 관계의 방식으로 구현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공동체가 된다.

편지의 마지막 권면은 간결하면서도 단단하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고 강건하되,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라는 요청이다. 강건함과 사랑은 분리될 수 없다. 강건함이 사랑을 잃으면 폭력이 되고, 사랑이 강건함을 잃으면 감상으로 흐른다. 장재형목사는 이 문장을 교회의 윤리적 나침반으로 제시한다. 깨어 있음은 내적 경건을 넘어 현실의 문제 앞에서 책임 있게 대응하는 태도다. 사랑으로 행하라는 명령은 감정이 아니라 선택과 배분, 의사결정의 동기를 요구한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6장은 교회의 운영 지침처럼 보이면서도, 그 깊은 층위에서는 교회의 영혼을 다루는 본문이 된다.

결국 장재형목사가 이 장에서 길어 올리는 핵심은 분명하다. 교회는 사랑을 말로 증명하지 않는다. 교회는 사랑을 실행하고 지속함으로써 복음이 현실에서 작동함을 보여 준다. 연보는 공동체적 책임으로, 재정의 투명성은 신뢰의 구조로, 사람에 대한 존중은 미래를 살리는 배려로 나타난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하라”는 명령은 신앙을 삶의 문법으로 번역하는 열쇠다. 그리고 마라나타의 소망은 교회가 지금 여기에서 사랑을 늦추지 않도록 붙드는 마지막 긴장이다. 이 본문은 오늘의 교회가 어디서 무너지고, 어디서 다시 세워져야 하는지를 묻는 깊은 영적 점검표가 된다. 사랑이 살아 있는 교회만이 진리를 진리답게 지키고, 사람을 사람답게 존중하며, 세상을 향해 복음을 복음답게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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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형목사, 사도 바울에게 배우는 제자도와 리더십의 정수

참된 교회의 지도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장재형(장다윗)목사는 언제나 똑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직함이나 카리스마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도의 길, 곧 삶으로 복음을 증언하는 길이다. 복음은 영웅담보다도 이름 없이 헌신한 제자들의 땀과 눈물을 타고 시대를 건너왔다. 그래서 리더십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이며, 리더를 세운다는 말은 곧 주님의 제자를 빚어 간다는 뜻이다. 이 관점에서 누가복음 9장은 제자도의 심장을 보여준다.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한 사람에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대답은 가난 예찬이 아니라 소유에 묶이지 않는 자유의 선언이다. 내일의 안전망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는 자유, 가진 것에 붙잡히지 않고 부르심에 붙잡히는 자유가 제자의 첫걸음이라는 뜻이다. 장례와 같은 가장 중대한 도리 앞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는 부르심이 도리의 순서를 새로 정렬한다. 무엇이 더 급한가가 아니라 무엇이 더 영원한가를 기준으로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결단, 그것이 제자도를 오늘의 시간표로 번역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다”는 말씀은 각오가 아니라 방향을 묻는다. 과거의 미련이나 인간적인 정에 발목 잡히지 않고, 앞서 가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곧게 밭고랑을 내리듯 한 길을 오래 걷는 일, 그 꾸준함이 제자의 체력이다.

이 정신은 마태복음 10장에서 구체적인 길잡이를 얻는다. 여벌 옷과 지팡이조차 의지하지 말라는 파송의 지침은 무모함을 강요하려는 말이 아니다. “일꾼이 그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약속에 뿌리내린 현실적인 영성, 곧 하나님이 준비하신 공급을 신뢰하는 훈련이자 동시에 교회가 사역자의 필요를 정당하게 돌보아야 한다는 원리다. 장재형목사는 이 균형을 놓치지 않는다. 현장의 일꾼은 계산된 안전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배우고, 공동체는 그 신실하심의 통로로 부름 받았음을 자각한다. 그래서 사도행전 18장에서 바울이 보여준 장면은 제자도의 성숙을 증명한다. 고린도에서 아굴라·브리스길라와 함께 장막을 만들며 자비량으로 복음을 전하던 그는, 마게도냐 교회의 선교 헌금이 도착하자 곧장 생업을 멈추고 말씀 사역에 전념했다. 여기서 드러나는 자비량의 본뜻은 사역비를 영구히 거부하는 금욕이 아니라, 복음의 진전을 위해 형편을 분별하고 유연하게 적용하는 지혜다. 전방에서 복음을 전하는 이들과 후방에서 재정과 기도로 받쳐 주는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충성할 때, 복음은 더 멀리 더 맑게 흐른다. 장재형목사가 강조하는 전방·후방 선교의 협력은 바로 이 성경적 결을 오늘의 구조와 문화 속에 다시 짜 넣으려는 노력이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헌신할 필요는 없지만,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헌신해야 한다는 점에서다.

이 흐름을 따라 고린도전서 9장은 제자도와 리더십의 결을 가장 또렷하게 드러낸다. 바울은 사역자의 정당한 권리를 분명히 인정한다. 복음으로부터 생계를 얻을 권리, 가정을 꾸릴 권리, 손수 일하지 않을 권리, 군인·농부·목자의 비유와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는 율법의 원리를 통해 사역자가 복음으로 사는 것이 합당하다고 논증한다. 그러나 그는 즉시 다른 길을 택한다.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한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라.” 장재형목사가 주목하는 대목이 바로 여기다. 참된 리더는 권리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권리를 아는 만큼 스스로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다. 권리를 포기하는 행위는 체면을 위한 금욕이 아니라, 복음의 문턱을 낮추고 연약한 자들의 양심을 지키려는 사랑의 실천이다. 혹여 누군가 그를 돈 때문에 일한다고 오해할 가능성,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이 값비싼 소식처럼 보일 위험을 원천 차단하려고, 바울은 자비량의 수고를 기꺼이 떠맡았다. 그리고 그는 단호하게 못 박는다. “나는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않았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내 자랑이 헛되지 않게 하겠다.” 그에게 복음 전파는 선택이 아니라 부득불 해야 할 명령이었고, 상급은 외적 보상이 아니라 “값없이 전함” 그 자체였다. 장재형목사는 여기서 제자도의 척도를 제안한다. 무엇을 더 소유하느냐보다 무엇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느냐가 리더십의 깊이를 가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비량을 모든 사역자에게 획일적으로 요구하지는 않는다. 바울이 때로는 일했고 때로는 전념했던 것처럼, 제자도는 현실을 무시하는 낭만이 아니다. 교회의 충분한 후원이 사역의 집중도를 높이는 시기가 있고, 자비량이 복음의 신뢰성을 증언하는 시기가 있다. 장재형목사가 제시하는 질문은 단순하다. 이 선택이 복음의 전진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가, 연약한 자들에게 걸림돌이 되는가, 공동체의 질서와 재정을 무너뜨리지 않는가. 이 질문에 따라 재정은 투명하고 단순해야 하며, 목적 지정 헌금과 일반 헌금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보고는 신뢰를 낳을 정도로 구체적이어야 한다. “일꾼이 그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원리를 절차로 번역해 사역자 지원을 은혜의 시혜나 눈치 보기의 대상이 아니라 합당한 질서로 정착시키는 일도 중요하다. 전임 사역과 자비량 사역은 우열이 아니라 형태의 차이이며, 교회는 각각이 복음에 더 유익하도록 코칭하고, 전환이 필요할 때 지혜롭게 돕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개인의 차원에서는 제자도의 언어를 일상의 문법으로 바꾸어야 한다. 무소유의 자유는 수입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소유에 묶이지 않는 마음의 훈련이다. 내가 없으면 불안한 것들이 무엇인지, 그것이 사명 수행을 가로막는지, 그 대상들에 대해 실제로 하나님께 신뢰의 행동을 했는지 점검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우선순위의 재편은 시간 관리에서 드러난다. 달력은 신앙고백의 거울이기에, 말씀과 기도, 제자 양육과 현장 전도의 시간을 사무처럼 배정하고, 성과를 숫자보다 사람의 변화로 기록하는 훈련이 요구된다. 뒤돌아보지 않는 헌신은 관계에서 증명된다. 리더의 말은 약속이 되고, 약속은 곧 길이 된다. 힘들다고 관계를 쉽게 갈아치우지 않고 오래 참고 다시 시작하는 끈기가 공동체에 안전을 준다. 자비량의 영성은 직업과 소명의 통합에서 가장 빛난다. 직장은 생계 수단이 아니라 파송지이고, 전문성은 복음을 위한 언어다. 바울에게 장막은 복음의 가림막이 아니라 복음의 다리였듯, 오늘의 전문가·자영업자·학생·창업자는 각자의 현장에서 성실과 탁월함으로 복음의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

디지털 시대의 제자도에 대한 경계도 필요하다. 정보의 과잉은 결단의 결핍을 낳는다. 많은 콘텐츠를 소비해도 한 가지를 오래 순종하지 않으면 영적 근육은 자라지 않는다. 장재형목사는 “뒤돌아보지 않는 헌신”을 온라인 습관에도 적용하라고 권면한다. 말씀을 스크롤로 흘려보내지 말고 삶의 규칙으로 새겨 넣으라. 공동체는 빠른 캠페인보다 느린 동행을 귀히 여기고, 사람을 프로젝트로 다루지 말고 사랑으로 낳아 말씀으로 키워야 한다. 리더는 말의 밀도가 아니라 삶의 일관성으로 신뢰를 얻는다. 약속한 작은 일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 결국 큰일도 맡을 수 있다.

결국 핵심은 권리의 신중한 사용이다. 권리를 모르는 순진함은 오래가지 못하고, 권리를 남용하는 미성숙은 공동체를 상하게 한다. 그러나 권리를 복음의 기준으로 절제하는 성숙은 교회를 세운다. 바울은 합법의 선에서 멈추지 않고 복음의 아름다움으로 나아갔다. 오늘 우리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것이 내게 합법한가를 넘어, 형제에게 유익한가, 복음에 아름다운가. 리더는 합법에서 아름다움으로 이동하는 사람이며, 그 이동의 에너지는 사랑이다. 그래서 참된 지도자는 제자다. 세상의 기준을 뒤집는 자유로, 영원의 가치를 현재에 우선하는 지혜로, 뒤돌아보지 않는 충성으로, 그리고 복음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권리를 제한하는 사랑으로 자신을 세운다. 그런 리더를 통해 제자가 또 다른 제자를 낳고, 교회는 권력으로가 아니라 생명으로 승계된다. 누가복음 9장의 자유, 마태복음 10장의 신뢰, 사도행전 18장의 자비량, 고린도전서 9장의 권리 포기는 한 줄기 강물처럼 합류하여 오늘 우리의 교회로 흘러든다. 우리가 이 부르심에 응답해 각자의 자리에서 전방이든 후방이든 충성으로 설 때, 복음은 값없이, 그러나 결코 싸구려가 아닌 존귀함으로 다시 빛날 것이다. 그리고 그 길 자체가 우리의 상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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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lumière de la vérité  –  Pasteur David Jang


1. Vérité et autorité révélées dans l’interrogatoire de Pilate

La situation dans laquelle Jésus est amené devant Pilate et soumis à un interrogatoire se trouve détaillée dans la seconde partie de Jean 18 et le début de Jean 19. Cette scène se déroule à la fin de la vie publique de Jésus, juste avant sa crucifixion. Elle constitue à la fois un moment dramatique et théologiquement crucial dans le procès qui aboutira à la mort de Jésus sur la croix. Le passage décrit Jésus se tenant devant le gouverneur romain, Pilate, après avoir été arrêté et jugé par les grands prêtres et le tribunal religieux juif. En particulier, les paroles et l’attitude de Jésus au cours de l’interrogatoire de Pilate, ainsi que la réaction de Pilate, mettent en évidence, de manière frappante, ce qu’est la vérité. En même temps, l’hypocrisie et la culpabilité des chefs religieux juifs, associées à la dynamique perverse de la foule, sont exposées au grand jour.

Lorsque Jésus est conduit devant Pilate, il vient déjà de passer une nuit à subir les interrogatoires des chefs religieux, qui l’ont finalement accusé de blasphème pour s’être proclamé “Fils de Dieu”. Cependant, les Juifs ne pouvaient pas légalement exécuter la peine de mort selon leurs propres coutumes ou lois (Jn 18:31). Ils livrent donc Jésus à Pilate, dans le but d’obtenir de lui une condamnation à mort, puisque seul le gouverneur romain – représentant le pouvoir de Rome – était habilité à autoriser et à exécuter une sentence capitale en Judée.

La première question de Pilate, lorsqu’il fait face à Jésus, est : « Es-tu le roi des Juifs ? » (Jn 18:33). Les chefs juifs avaient transformé l’accusation portée contre Jésus en une accusation de rébellion contre Rome, alléguant qu’il se proclamait “roi des Juifs” et menaçait ainsi l’Empire romain. Mais Jésus répond clairement qu’il n’est pas un roi au sens terrestre et politique. Il déclare : « Mon royaume n’est pas de ce monde » (Jn 18:36), montrant ainsi qu’il n’a aucune intention de s’emparer de quelque trône politique dans la structure romaine ou juive, ni d’exercer un pouvoir terrestre par la force. Pour Pilate, c’est une déclaration d’une grande importance : en tant que représentant de Rome, il craignait avant tout les révoltés politiques ou les traîtres à l’empire. Or, Jésus précise que son Royaume n’appartient pas à l’ordre politique ni aux puissances séculières dont Pilate est un acteur.

Cette parole de Jésus recèle deux significations profondes. Premièrement, le royaume de Jésus est le royaume éternel de Dieu, un royaume où règnent la vérité et l’amour. Il ne s’appuie pas sur des moyens politiques ou militaires. Au contraire, il libère l’humanité de la puissance du péché et de la mort, offrant le salut et la vie éternelle. Deuxièmement, Jésus désamorce d’emblée le risque que Pilate puisse le considérer comme un rebelle politique. En effet, Jésus lui fait observer que si son royaume était de ce monde, ses disciples se seraient battus pour l’empêcher d’être livré aux Juifs (Jn 18:36). Aux yeux de Pilate, cette explication était sans doute convaincante : aucune résistance armée ne s’était manifestée. Jésus proclame ainsi que son Royaume est, par essence, différent des royaumes de ce monde, qui s’imposent par la force, et qu’il est donc totalement étranger à l’image de rebelle que les chefs juifs tentaient de lui attribuer.

À cette déclaration, Pilate demande encore : « Tu es donc roi ? » (Jn 18:37). C’est comme s’il disait : « Es-tu vraiment sûr de posséder une autorité royale ? » Pilate ne sait pas très bien quel est ce “royaume d’un autre ordre”, mais il pressent, au contact de Jésus, qu’il n’a pas affaire à un simple prisonnier politique. Il devine peut-être en Jésus quelque chose qui relève d’une autorité et d’une vérité supérieures. La réponse de Jésus est, encore une fois, très claire : « Tu le dis, je suis roi. Je suis né et je suis venu dans le monde pour rendre témoignage à la vérité. Quiconque est de la vérité écoute ma voix » (Jn 18:37). Jésus met l’accent sur le fait qu’il est lui-même la Vérité, qu’il est venu dans ce monde pour “rendre témoignage à la vérité”. Et il précise que seuls ceux qui “appartiennent à la vérité” peuvent entendre sa voix.

La phrase « Quiconque est de la vérité écoute ma voix » exprime un principe théologique et spirituel crucial. Autrement dit, peu importe l’instruction, le statut religieux ou la puissance politique d’une personne : si elle ne connaît pas la vérité, elle ne pourra pas discerner la voix de Jésus. En revanche, toute personne dont le cœur est véritablement ouvert par l’Esprit de Dieu, toute personne humble en quête de vérité – qu’elle soit gouverneur romain ou habitant d’une lointaine région de Galilée – peut accueillir la parole de Jésus comme la vérité du Roi, et le reconnaître pour qui il est. Pourtant, dans l’Évangile de Jean, on lit que Pilate, à cette déclaration, rétorque : « Qu’est-ce que la vérité ? » (Jn 18:38), avant de se détourner de Jésus, sans attendre de réponse. Cette remarque indique que Pilate n’a pas, ou n’a plus, de réelle disposition à écouter et à s’engager envers la vérité.

Par la suite, Pilate déclare à deux reprises à la foule juive : « Je ne trouve en lui aucun motif de condamnation » (Jn 18:38). Pour lui, Jésus ne méritait pas la peine de mort. De plus, en écoutant directement Jésus, Pilate dut éprouver qu’il n’avait pas affaire à un agitateur politique, mais au contraire à un homme impressionnant de dignité et de pureté. Il reconnaît publiquement qu’il ne trouve aucune faute en Jésus, déclaration qui démontre la conclusion à laquelle il était parvenu. Pourtant, les chefs et la foule juive insistent pour exiger l’exécution de Jésus, allant même jusqu’à réclamer la libération d’un criminel notoire, Barabbas (Jn 18:40). Barabbas était un voleur, un agitateur, un meurtrier (Mc 15:7 ; Lc 23:19 ; Ac 3:14). Du point de vue romain, c’était un bandit si dangereux qu’il méritait la peine capitale. Mais les chefs religieux, manipulant et pressant Pilate, parviennent à faire basculer le procès en faveur d’une condamnation de Jésus.

Malgré son désir apparent d’épargner Jésus, Pilate finit par céder à la pression de la foule, aux enjeux politiques et à la menace selon laquelle : « Si tu relâches cet homme, tu n’es pas l’ami de César » (Jn 19:12). De fait, avant de le livrer à la croix, Pilate fait fouetter Jésus, pensant peut-être calmer la foule par la violence (Jn 19:1). Puis il se prête à la dérision : il fait tresser une couronne d’épines que l’on pose sur la tête de Jésus, et on l’habille d’un manteau de pourpre (Jn 19:2–3). Pilate espérait sans doute apaiser la colère populaire en infligeant à Jésus une humiliation publique, mais cela ne fait qu’attiser les cris réclamant la crucifixion.

Ainsi, l’interrogatoire de Pilate révèle que, même du point de vue du pouvoir séculier, Jésus est innocent. Pourtant, le processus conduit à ce paradoxe : l’Innocent est condamné à mort à cause de la méchanceté humaine, de l’hypocrisie religieuse, et du compromis politique. À trois reprises, Pilate déclare : « Je ne trouve aucun crime en lui » (cf. Jn 18:38, 19:4, 19:6), mais finit par entériner la crucifixion. Dans tout cela, l’Évangile de Jean souligne que Jésus est injustement condamné, tout en montrant que cette mort s’inscrit dans le plan rédempteur de Dieu.

De ce passage évangélique, on peut dégager trois points-clés :

  1. L’innocence de Jésus : Le fait que le gouverneur romain lui-même déclare à plusieurs reprises qu’« il ne trouve aucune faute en Jésus » manifeste, dans un contraste saisissant, que Jésus est sans péché.
  2. Le Royaume de Jésus n’est pas de ce monde : Jésus n’est pas un rebelle politique, ni un roi terrestre. Il est le roi de la vérité et le souverain du Royaume de Dieu. Ainsi, la parole « Mon royaume n’est pas de ce monde » (Jn 18:36) est un repère essentiel pour l’identité du chrétien : elle indique vers quel royaume et quelle souveraineté nous devons orienter notre vie.
  3. Le rejet de la vérité par les autorités religieuses et politiques : Alors même qu’ils se réclament de Dieu et attendent le Messie, les chefs religieux juifs rejettent le Fils de Dieu pour préserver leurs intérêts et leur pouvoir. Ce faisant, ils crucifient celui qu’ils auraient dû accueillir. Cette scène illustre la manière dont, lorsque la vérité paraît, les hypocrites et les menteurs se trouvent exposés et jugés.

David Jang목사 souligne, dans cette scène où Jésus se tient devant Pilate, l’importance pour les croyants de méditer profondément sur la démarche et l’attitude que nous sommes appelés à avoir dans notre foi. Face à l’affirmation de Jésus selon laquelle il est « venu dans le monde pour rendre témoignage à la vérité », il invite l’Église et les chrétiens d’aujourd’hui à réfléchir à l’attitude à adopter devant les pouvoirs de ce monde. David Jang목사 parle souvent du concept de « la royauté de la vérité de Jésus » : il ne s’agit pas d’entrer en conflit ou en rébellion contre les autorités terrestres, mais de reconnaître en Jésus le souverain qui est venu donner la vie à l’humanité souillée par le péché, la mort et le mensonge. Ceux qui n’appartiennent pas à la vérité n’entendront pas la voix de Jésus et finiront par se soumettre au pouvoir du monde ou l’utiliser pour assouvir leurs convoitises. Mais ceux qui sont de la vérité, c’est-à-dire ceux qui reconnaissent Jésus comme roi, sont appelés à suivre l’exemple que Jésus a donné : bien que le Royaume de Dieu ne soit pas “de ce monde”, il y est cependant présent pour proclamer la vérité.

Ainsi, l’interrogatoire de Pilate réunit à la fois la mise en évidence de l’innocence de Jésus et la révélation du chemin rédempteur qui le conduit, malgré tout, à la croix. Quand les chrétiens méditent ce passage, ils perçoivent que l’enseignement de Jésus – l’amour, le pardon, la foi dans le Royaume de Dieu – se situe à un tout autre niveau que celui des puissances de ce monde et des intérêts religieux institutionnels. Aujourd’hui encore, nombreux sont ceux qui ne reconnaissent pas Jésus, tout comme ceux qui, dans ce récit, n’ont pas compris qui il était. Cependant, Jésus poursuit inlassablement l’annonce de la vérité, et sa crucifixion, en apparence insensée, est la voie choisie par Dieu pour sauver l’humanité. L’attitude majestueuse et humble de Jésus devant Pilate anticipe déjà la victoire de la résurrection.

En somme, l’interrogatoire de Pilate illustre la manière dont la voie des chrétiens se distingue des puissances terrestres. Les royaumes de ce monde reposent souvent sur la violence, la coercition, la stratégie politique, le pouvoir militaire et économique – l’Empire romain de l’époque de Jésus en étant un exemple emblématique. Le “Royaume de Dieu” tel que l’exprime Jésus, au contraire, peut sembler faible et se termine même sur un instrument de torture humiliant, la croix. Pourtant, dans cette crucifixion, Dieu déploie la puissance de la résurrection et offre la véritable liberté. C’est cette « royauté de la vérité » que l’évangéliste Jean souligne de manière si saisissante.https://www.youtube.com/watch?v=2fuLEttN1gs


2. La tension entre les pouvoirs du monde et le Royaume de Dieu

La parole de Jésus à Pilate : « Mon royaume n’est pas de ce monde » (Jn 18:36) a suscité, tout au long de l’histoire, de nombreuses interprétations et applications. À certaines époques, on s’en est servi pour justifier une totale séparation entre l’Église et le monde. D’autres y ont vu un appel à transformer activement les domaines politique, économique et culturel, en interprétant cette transformation comme l’expansion du Royaume de Dieu. Cependant, dans le contexte de l’interrogatoire, lorsque Jésus dit « Mon royaume n’est pas de ce monde », il affirme que son autorité ne se limite ni ne s’explique à l’aune des enjeux politiques de Pilate ou de l’horizon religieux des chefs juifs. Jésus, dans ses buts et dans ses méthodes, se fonde sur une vérité que le monde ne saurait ni comprendre ni imiter. Les détenteurs du pouvoir, eux, cherchent à instrumentaliser la “vérité” pour leurs intérêts. Jésus, au contraire, déclare : « Quiconque est de la vérité écoute ma voix » (Jn 18:37), soulignant que cette vérité n’a rien à voir avec le statut social, la force ou le pouvoir politique.

La tension entre la vérité et le pouvoir du monde se retrouve dans tout l’Évangile. Les conflits répétés de Jésus avec le pouvoir religieux, aboutissant à son procès devant Pilate, représentant du pouvoir séculier, en constituent le moment le plus emblématique. Et pourtant, ironie du sort : Pilate, en tant que représentant de l’autorité romaine qui condamne Jésus à la crucifixion, reconnaît à trois reprises qu’il ne trouve aucune faute en lui. Cela démontre, d’une part, que même le pouvoir du monde ne pouvait nier l’innocence et la pureté de Jésus, et d’autre part, que Jésus n’a pas cherché à s’opposer par la force ou la manigance politique. Il supporte en silence les coups de fouet et les humiliations. Cela révèle que la souveraineté de Jésus appartient à un ordre radicalement différent de celui des puissants de la terre.

Pourquoi, alors, les chefs juifs et la foule ont-ils eu tant d’acharnement à tuer Jésus ? Parce qu’il ébranlait l’ordre religieux établi, mettant en lumière leur hypocrisie et leur abus d’autorité, en démasquant leur manière d’opprimer les gens sous couvert d’enseignement. Ils ont donc estimé devoir l’éliminer pour préserver leurs privilèges. Sous prétexte d’accusation de rébellion à l’égard de Rome, ils ont poussé Pilate à prononcer la crucifixion. Extérieurement, on aurait pu croire à leur “ferveur religieuse”, mais ils rejetaient en réalité le Messie qu’ils disaient attendre. Ainsi, se confirme la parole de Jésus à Pilate : ceux qui ne sont pas de la vérité ne le reconnaissent pas comme tel. Pilate, de son côté, bien qu’ayant posé la question « Qu’est-ce que la vérité ? » (Jn 18:38), n’a pas cherché à connaître la réponse. Au lieu de cela, il a cédé à ses propres craintes et calculs politiques. Jésus, lui, accepte de porter sur la croix la méchanceté de l’humanité et de réaliser le salut.

La question des responsabilités respectives de Pilate et des chefs juifs dans la mort de Jésus a été largement débattue par les théologiens. Qui a vraiment mis Jésus à mort ? Les Évangiles affirment que la mort de Jésus n’est pas seulement le résultat d’une manigance religieuse ou politique, ni d’un simple verdict judiciaire, mais un acte rédempteur prédéterminé par Dieu pour racheter l’humanité tout entière. En prenant sur lui le prix du péché, Jésus – le Juste innocent – meurt pour sauver les pécheurs. Les chefs religieux et Pilate n’ont été que des instruments dans ce dessein de Dieu, même si cela n’enlève rien à la gravité de leurs actes : ils ont fait périr un innocent. Le récit évangélique y voit le symbole de la culpabilité de l’humanité, dans la mesure où, par notre péché, nous participons tous à la crucifixion de Jésus.

David Jang exhorte les chrétiens à appliquer cette controverse entre Jésus, Pilate et la foule juive à la réalité contemporaine. Dans ses prédications, il souligne que Jésus continue aujourd’hui à “rendre témoignage à la vérité”. La question est de savoir si l’Église et les croyants appartiennent à cette vérité ou s’ils s’allient aux pouvoirs du monde en l’ignorant. Il avertit qu’il n’est que trop facile de reproduire l’attitude des chefs religieux juifs, qui ont sacrifié la vérité pour conserver leur statut et leur confort, tout en prétendant servir Dieu. On en voit des exemples lorsque l’Église, par désir d’honneurs humains, de richesses, ou par crainte de perdre sa place sociale, en vient à trahir l’essence de l’Évangile. David Jang목사 insiste : la “vraie autorité de Jésus” n’est pas faite pour combattre les puissances du monde, mais elle consiste en la venue de Jésus pour aimer et sauver une humanité corrompue par le péché et la mort. Si nous ne sommes pas de la vérité, nous tenterons d’exploiter ou de craindre le pouvoir séculier, au lieu de rester fidèles à l’exemple de Jésus, qui a affirmé son identité de roi sans pour autant recourir à la force.

Le choix de la foule de faire libérer Barabbas, au détriment de Jésus, demeure très parlant pour notre société actuelle. Il arrive parfois que les foules soutiennent des leaders violents ou extrêmes qui proposent de renverser l’ordre établi, en projetant sur eux leurs frustrations et désirs de vengeance. Barabbas était un agitateur, un criminel, mais certains voyaient probablement en lui un potentiel libérateur contre Rome. Jésus, en revanche, ne procède pas par la violence pour changer le monde. Il apporte la souveraineté du Père céleste dans la puissance de l’Esprit. Depuis l’extérieur, on le voit comme un roi humilié à la croix, un échec, mais la résurrection manifestera finalement sa victoire sur la mort. Ainsi, ceux qui se rattachent à Jésus sont appelés à rejeter les méthodes et les critères de réussite de ce monde. David Jang목사 y revient souvent, citant l’apôtre Paul : « Nous n’avons pas à lutter contre la chair et le sang, mais contre les dominations, contre les autorités, contre les princes de ce monde de ténèbres… » (cf. Ép 6:12). Ce n’est pas dans un affrontement de forces visibles que se construit le Royaume de Dieu, mais en tenant fermement la vérité et en pratiquant l’amour dans la puissance de l’Esprit.

En même temps, la parole « Mon royaume n’est pas de ce monde » ne doit pas être interprétée comme un appel à fuir totalement la société. Dans un autre passage de l’Évangile de Jean, Jésus prie pour ses disciples : « Je ne te prie pas de les enlever du monde, mais de les préserver du mal » (Jn 17:15). Autrement dit, ils sont envoyés vivre dans le monde tout en résistant à la corruption qui y règne, guidés par la vérité et l’Esprit Saint. De plus, Jésus déclare : « Comme le Père m’a envoyé, moi aussi je vous envoie » (Jn 20:21). Cela veut dire que, même si nous sommes citoyens du Royaume de Dieu, notre vocation est de rayonner et de transmettre l’Évangile au sein même de ce monde. David Jang목사 insiste : « Si les disciples de Jésus se retiraient pour vivre entre eux, l’œuvre de la croix resterait inachevée. » Il nous invite donc à maintenir la sainteté et la séparation d’avec le péché, tout en servant activement la société autour de nous avec la vérité et l’amour de Christ.

Néanmoins, discerner la vérité et s’y attacher ne va pas de soi. Les chefs religieux juifs, pourtant zélés pour la Loi et affirmant attendre le Messie, n’ont pas reconnu Jésus quand il est venu. Pire, ils l’ont éliminé, car sa vérité mettait en lumière leur hypocrisie. Nous ne sommes pas à l’abri d’une telle dérive. Lorsqu’une Église se satisfait de formes religieuses, qu’elle se compromet avec les avantages du monde, et néglige la vérité radicale de l’Évangile, elle risque de passer à côté de la voix de Jésus. À l’image de Pilate, elle peut bien poser la question « Qu’est-ce que la vérité ? » sans jamais accueillir celui qui est la Vérité en personne.

C’est pourquoi David Jang목사 appelle l’Église à un examen de conscience et à un retour à l’essentiel de l’Évangile. L’épisode de l’interrogatoire de Jésus par Pilate confronte chaque croyant à la question : « À quel roi appartiens-tu ? » Sommes-nous inféodés au pouvoir, à la réputation, à l’argent, à la sécurité ? Ou bien comprenons-nous vraiment le “style de règne” de Jésus, qui a manifesté dans la croix l’essence de l’amour et de l’obéissance au Père ? Le Royaume de Jésus ne s’appuie pas sur la force ou la ruse, mais s’étend au travers du don de soi et de la puissance de l’Esprit. C’est ce qui différencie de manière décisive Jésus de Barabbas, agitateur assoiffé de révolution violente.

Pour les chrétiens d’aujourd’hui, imiter Jésus devant le tribunal de Pilate signifie accepter de subir parfois la raillerie, la calomnie ou l’injustice, tout en demeurant dans la vérité et l’amour de Dieu. Lorsque les puissances terrestres nous demandent : « Mais quel est ce royaume dont vous parlez ? Qui est ce roi ? », nous devons répondre, comme Jésus, avec fermeté et clarté : « Notre royaume n’est pas de ce monde. Jésus-Christ, roi de vérité, est notre souverain. » Et ce témoignage ne doit pas seulement se formuler en paroles : il doit s’incarner dans la modestie, la douceur, le sacrifice et l’amour, à l’image du Christ, afin d’être crédible.

David Jang목사 met également en exergue le sens substitutif du geste de Jésus, qui porte devant Pilate le jugement que nous aurions dû porter. Jésus, déclaré innocent, n’a jamais commis la moindre faute ; cependant, il meurt sur la croix pour prendre la place des pécheurs que nous sommes. S’il avait été coupable, la croix n’aurait pu être un sacrifice rédempteur. Mais il s’agit là d’un amour dépassant l’entendement humain : le Fils de Dieu, devenu homme, a enduré volontairement une souffrance imméritée pour libérer de la condamnation ceux qui mettront leur foi en lui. Pour David Jang목사, se dire chrétien consiste à croire et recevoir ce don de salut, puis à laisser cette même logique d’amour guider notre conduite quotidienne.

Comment ce conflit entre l’« autorité de Jésus » et les « pouvoirs du monde » s’observe-t-il concrètement dans notre existence moderne ? Souvent, il ne s’agit pas de procès politiques spectaculaires, mais de situations ordinaires dans lesquelles on fait pression sur nous pour que nous compromettions la vérité afin de gagner des avantages personnels ou d’éviter des ennuis. Le chrétien est appelé à refuser de mentir, de flatter, de piétiner les faibles pour progresser. Il peut arriver qu’il subisse des injustices, tout comme Jésus devant Pilate. Pourtant, c’est la voie de la croix, l’imitation de Jésus. David Jang목사 affirme : « Si nous restons fermes dans la vérité face à la dérision du monde qui nie l’existence d’un roi et d’une vérité absolue, nous pourrons certes connaître la souffrance. Mais au terme de cette route nous attend la résurrection, la vie éternelle, et la gloire du Royaume de Dieu. »

Il met aussi en garde contre la possibilité que, même au sein de l’Église, des attitudes semblables à celles de Pilate ou des chefs religieux réapparaissent. Il se peut qu’une communauté chrétienne se concentre sur la splendeur de ses cultes, la multiplication de ses programmes, ou encore l’expansion numérique, tout en s’éloignant de la vérité et de l’amour. C’est alors comme si, sous couvert de dire « Seigneur, Seigneur » (Mt 7:21), on crucifiait Jésus à nouveau. Or Pilate avait certes le désir de libérer Jésus, mais il était trop faible ou opportuniste pour résister à la foule. Les chefs juifs, eux, suivaient scrupuleusement la Loi en apparence, mais, en réalité, rejetaient le cœur de Dieu manifesté en Jésus.

Ce récit illustre donc clairement comment se combinent, dans le monde, l’injustice du pouvoir, le rejet de la vérité et l’hypocrisie religieuse. Simultanément, il montre que Jésus, porteur de la vérité et de l’amour, endure tout pour opérer le salut. David Jang목사 en conclut qu’aujourd’hui encore, nous nous trouvons à la place de Pilate, face à Jésus, et confrontés à la même interrogation : « Qu’est-ce que la vérité ? À quel roi obéis-tu ? » Le croyant doit répondre : « Je suis de la vérité, donc j’écoute la voix de Jésus. Jésus est mon Roi. » Et il doit le prouver par son mode de vie, au sein de l’Église comme dans la société, en rayonnant la vérité et l’amour du Christ.

Dans cet interrogatoire de Pilate, nous voyons la proclamation de l’innocence de Jésus, l’affirmation de sa royauté fondée sur la vérité, et le constat effrayant que la foule et les chefs religieux, aveuglés par leurs craintes et leurs convoitises, ont condamné le Seigneur sans faute. Pourtant, c’est précisément par cette crucifixion, injuste aux yeux des hommes, que s’accomplit le plan divin de rédemption. Jésus meurt, puis ressuscite, détruisant ainsi la mort et inaugurant le règne éternel de Dieu. Seuls ceux qui appartiennent à la vérité, ceux qui reconnaissent Jésus comme roi, peuvent saisir ce mystère. Ils reçoivent la vie éternelle en échappant au péché et à la mort.

Pour le chrétien, ce passage rappelle la vocation à vivre “dans le monde, sans être du monde”. À la suite de Jésus qui, face à Pilate, annonce qu’il est venu rendre témoignage à la vérité, David Jang목사 insiste : de nos jours, beaucoup demandent encore : « Qu’est-ce que la vérité ? » sans parvenir jusqu’au Christ. L’Église, elle aussi, peut se laisser corrompre, nouer des alliances avec les puissances terrestres et s’éloigner de Jésus, à l’instar des anciens chefs juifs. Aussi devons-nous constamment veiller, par la prière et la Parole, à écouter le Seigneur et à proclamer sans crainte : « Mon royaume n’est pas de ce monde. » Cela ne signifie pas s’extraire ou fuir le monde, mais affirmer notre identité de citoyens du Ciel, inébranlables dans la vérité, et accomplir notre mission de témoignage au milieu du siècle présent.

L’interrogatoire de Pilate est donc un événement où Jésus se révèle comme “roi de la vérité” et où Pilate et les chefs juifs, tout en refusant de voir cette vérité, exposent leur propre péché. Mais, en définitive, la croix de Jésus devient le canal par lequel s’accomplit le plan rédempteur de Dieu. Et aujourd’hui, nous avons accès à la vérité qui libère du péché et de la mort. « Quiconque est de la vérité écoute ma voix » : cette parole de Jésus demeure d’actualité, et David Jang목사 nous exhorte à entretenir notre foi en accueillant Jésus comme roi de notre vie. À la suite du Christ, nous devons, dans l’humilité, annoncer l’Évangile en plein cœur du monde, pour qu’il puisse, de la simple question « Qu’est-ce que la vérité ? » progresser jusqu’à la rencontre personnelle avec Jésus-Christ, la Vérité. C’est là tout l’enjeu de ce passage et la mission qui incombe aujourd’hui à ceux qui se réclament disciples du Seigneur.

http://www.davidjang.org

真理之光 —— 张大卫牧师


1. 在彼拉多的审问中所彰

耶稣被带到彼拉多面前受审的情景,主要记载在《约翰福音》第18章后半部至19章前半部。这段情节发生在耶稣公开事工即将结束、即将被钉十字架之前的审判过程中,具有极其戏剧性和神学上的重要意义。经文描述了耶稣被捕之后,经过大祭司与犹太人的宗教审判,再被押送到罗马总督彼拉多面前的情景。尤其是在彼拉多的审问过程中,耶稣的言语与态度,以及彼拉多对此的反应,戏剧性地彰显了“真理”究竟是什么,同时也彻底揭露了犹太大祭司与宗教领袖的罪性,以及群众被煽动起来时所表现出的邪恶群体心理会带来何等可怕的结果。

当耶稣站在彼拉多面前时,祂其实已经被宗教领袖捉拿并在夜间反复审问,最后被定了“自称为上帝之子”的亵渎罪。然而,犹太人依照他们本地的宗教习惯或律法并没有权限执行死刑(参约18:31),于是他们把耶稣带到罗马总督彼拉多那里,企图通过罗马法律来判处耶稣死刑。毕竟彼拉多是罗马帝国委派管理耶路撒冷及其周边地区的长官,若要在犹太地执行死刑,必须得到他的同意。

彼拉多第一次与耶稣对话时,便问了一个关键问题:“你是犹太人的王吗?”(约18:33)之所以这样问,是因为犹太宗教领袖指控耶稣“自称犹太人的王”,等同于是反叛罗马帝国的政治犯。但耶稣十分清楚地表明,自己不是现世间政治层面意义上的“王”,也并不想在罗马或犹太的政治结构中篡权夺位。耶稣说:“我的国不属这世界”(约18:36),以此强调自己并不是想以世俗政治或武力统治的方式来夺取王位。这对彼拉多而言是一项极其重要的陈述。因为作为罗马的总督,他最担忧的就是那些会煽动民变、危害罗马统治的“反叛者”。耶稣的话明显表示:祂所宣告的国度并非世俗政治框架内的势力范围,也不在彼拉多所熟知的权力版图之内。

在此,耶稣的回答有两重深邃的含义。
第一,耶稣的国度是永恒的神之国,那里实现的是真理与爱的统治。这国度并不依赖今世的政治或军事力量,反而是要从罪和死亡的权势中释放人类,赐下救恩与永生。那正是耶稣的国度,也是祂王权彰显之处。
第二,耶稣事先阻断了彼拉多对祂进行政治叛乱指控的可能。对于彼拉多而言,如果耶稣真要以武力推翻罗马帝国,那么祂的门徒应该早已与罗马军队交战,但并没有出现这样的事态。耶稣进一步说明:“我的国若属这世界,我的臣仆必要争战,使我不至被交给犹太人”(约18:36),藉此再次表明自己的国度与世上依赖暴力扩张的王国截然不同,也与彼拉多最忌惮的“政治叛乱分子”形象完全无关。

听到这些,彼拉多再次发问:“那么,你不是王吗?”(约18:37)换言之,他想确认:“你真的相信自己拥有某种王权吗?”彼拉多或许不明白耶稣所说的“另一个世界的国度”究竟是什么性质,但显然从耶稣所说的话中,他可能隐约感受到,耶稣并不是一个政治阴谋家,而是带着一种高于世俗层面的权威与真理。耶稣随即再次明确地回答:“你说的是,我是王。我为此而生,也为此来到世间,特为给真理作见证。凡属真理的人就听我的声音”(约18:37)。这里,耶稣突出宣告自己就是那“真理”,而祂降世的目的即是“为真理作见证”;同时也强调,唯有“属真理的人”才能听懂并领受祂的声音。

“属真理的人听耶稣的声音”这一宣告,涵盖极其重要的神学与属灵原则。一个人不管接受过多高的教育,或在宗教界、政治界享有多高的地位,若没有真正认识真理,就无法领会耶稣的声音。相反,那些内心被圣灵开启、谦卑寻求真理的人,不论是罗马总督,还是住在加利利边境的平凡人,都可以接受耶稣宣告的“真理之王权”。可惜的是,彼拉多并没有对此产生深入的回应,而是问了一句“真理是什么呢?”(约18:38)之后,便不再等待耶稣的答案。《约翰福音》的作者明确点出,彼拉多并不是真心想寻找真理,也没有心力和时间去体会耶稣话语背后的属灵深度。

接着,彼拉多两次对犹太群众说:“我查不出他有什么罪来”(约18:38 等),表示他认为并无任何证据能给耶稣定罪。再加上听了耶稣的陈述,他或许也察觉到耶稣并非政治叛乱首领,而是一个带着庄严与纯洁气质的人。然而,大祭司与宗教领袖却不停煽动群众要求处死耶稣,甚至提出要释放“巴拉巴”而处死耶稣(约18:40)。巴拉巴是强盗、也是煽动暴乱与杀人的恶徒(可15:7;路23:19;徒3:14),从罗马法律角度来看,他才是该被处以极刑的罪犯。可见当时的犹太宗教领袖与百姓,不惜透过各种威逼利诱,试图迫使彼拉多判耶稣死刑。

彼拉多虽然一再想释放耶稣,但最终为了平息群众情绪和维护自己的政治地位,也因恐惧被指“不是该撒的忠臣”(约19:12),终于让步。他先用鞭打等方式折磨耶稣,希望借此缓和民众怒气(约19:1),并给耶稣戴上荆棘冠冕、披上紫袍进行戏弄(约19:2–3)。或许彼拉多本想“这样做能消一部分人的气,再把耶稣放了”,却适得其反,群众反而更加高声呼喊要钉耶稣十字架。

因此,在彼拉多的审问里,一方面展现出“即使是罗马的权势者,也不得不承认耶稣无罪”的过程;另一方面,也显明“无罪的耶稣”如何被宗教领袖的恶意与政治妥协逼上了十字架的路。这构成了一个巨大的悖论:彼拉多曾三次宣称“在这人身上,我找不出什么罪”(参约18:38, 19:4, 19:6),可他最后依然宣判耶稣接受极刑。《约翰福音》透过这一过程,不仅揭示了耶稣被冤屈致死,而且宣告这场受难并非意外,而是在上帝的救赎计划之内。

透过《约翰福音》中彼拉多审问的细节,可见几条关键信息:
第一,耶稣无罪。即便罗马总督也两次公开宣称在耶稣身上找不到罪证,这在客观历史层面见证了耶稣的清白。
第二,耶稣不是世俗概念中的“犹太人的王”,而是“真理的王”、“神国的君王”。祂所说“我的国不属这世界”的话,对如今基督徒的自我定位也有重要启示:我们真正的根基,应当立在神的国度之上。
第三,真理反被虚伪的宗教权力和政治利益合谋所排斥,形成令人痛心的讽刺。表面上宣称敬拜上帝、等待弥赛亚的犹太宗教领袖,却亲手推动处死了那真正的神子。由此,当真理临到之时,一切假冒与虚伪都被暴露且招致审判。

张大卫牧师在阐述这段经文时,特别强调:从耶稣在彼拉多面前的样子,可以深入思考我们信仰的本质与方向。耶稣说“我为此而来,是为真理作见证”,那么今日教会和基督徒在面对世间的权势时,究竟该保持怎样的态度?张大卫牧师常提到“耶稣的真理王权”,并指出这并不是要与世间政权争斗或对立,而是要认清耶稣乃是那位“赐给罪与死之人以生命的统治者”。那些不属真理的人,无论拥有多少权力或宗教头衔,都听不懂耶稣的声音,也会顺从或利用世间权力去谋取私利;而真正属真理的人,哪怕地位卑微,却能以“承认耶稣为王”的姿态,在各样处境中跟随祂。我们当效法耶稣的榜样:神的国并非出于世界,却要进入世界,宣扬真理、施行拯救。

因此,彼拉多的审问同时揭示了耶稣的无罪,以及祂甘愿接受苦难、走上十字架之路的救赎奥秘。基督徒默想这段经文时,会更深体会耶稣宣讲的真理——爱、饶恕,以及对神国度的坚信,皆是远超现世权力或宗教特权之上的。世界不认识耶稣,今天仍有许多人拒绝甚至敌对真理;可耶稣依然不折不扣地坚持宣告真理,并甘愿为此被钉十字架。看似愚拙的十字架,正是神拯救人类的途径。换言之,彼拉多面前那庄严又温柔的耶稣,暗中孕育着日后因复活而印证的伟大胜利。

因此,彼拉多的审问场景,让我们看清基督徒的道路与世间权势究竟何等不同。世上的王权,多以暴力、威吓、政治手段、军事与经济实力来建立与维持;罗马帝国便是典型代表。而耶稣所彰显的“神的国度”表面上看似软弱无力,最终还以十字架这种屈辱的行刑方式结束,好像彻底失败。然而,十字架之后却是复活与永生的宣告,人也因此得以获得真自由。这正是约翰所极力突显的耶稣“真理王权”的核心。


2. 紧张

耶稣对彼拉多所说的那句“我的国不属这世界”(约18:36),在教会历史上引发了无数讨论和应用。有些时代,人们把这句话当作教会应当完全退出世俗、与之割裂的根据;也有些时候,又有人主张在政治、经济、文化领域积极介入,认为这正是扩张神国的方式。但从约翰福音的语境来看,“我的国不属这世界”是耶稣对彼拉多及犹太宗教领袖的“政治性理解”进行超越,宣告自己来自一个更高维度的真理国度。耶稣的目标与方法,非世间政客或组织所能理解或模仿。世上权势者往往想把“真理”当作工具来推进自己的政治或经济利益,但耶稣则断言:“唯有属真理的人才能听见我的声音”,表明真理与人外在的地位和势力全无关系。https://www.youtube.com/watch?v=2fuLEttN1gs

整个福音书都在不断展现真理与世间权势的冲突。耶稣在公开事工期间,与宗教权力不断对立,最终更在彼拉多这世俗长官手下被判钉十字架。这极具讽刺意味的是:彼拉多在审判过程里虽然三次声称找不出耶稣的罪证,却依然判了耶稣死刑。可见,即便世俗当权者也无法否认耶稣的无辜与纯洁,但耶稣却从未以政治权谋或武力去抵挡或自卫,反而在鞭打和羞辱中保持沉默。由此愈发衬托出,耶稣所拥有的王权与世间统治者渴求的“权力”是截然不同的概念。

为什么犹太领导者与民众非要置耶稣于死地不可?因为耶稣撼动了他们的宗教体系,揭露了他们的虚伪、压迫与骄傲。耶稣指出那些掌权者如何用律法束缚人,却自己不肯践行真诚的爱与怜悯。如此,宗教领袖们认为若不铲除耶稣,就会失去他们赖以生存的权威和地位。他们遂联合群众,在彼拉多面前诬告耶稣为反叛者,好让罗马法能判处祂死刑。表面看,他们是“狂热捍卫信仰”,实则是用宗教外衣掩护对真弥赛亚的拒绝。至于彼拉多,他问了“真理是什么”,却没有等答案便离开,象征他对真理既无兴趣,也无追求之心。耶稣则带着对人类罪恶的怜悯甘愿走向十字架,要成就更崇高的救恩计划。

在神学界,人们也常讨论:在耶稣被害一事上,彼拉多应负多大责任?犹太宗教领袖又应负多大责任?从福音书整体信息来看,耶稣的受死并不仅仅是宗教、政治阴谋的结果,而更是背负人类罪孽、实现救赎的神圣安排。耶稣虽完全无罪,却代替罪人受死,担当我们的刑罚,是神在永恒中预定的救世宏图。彼拉多和犹太领袖只是在这计划里扮演了“加害者”的角色,这当然不能免去他们的罪过。但同样也预表了所有人都因自己的罪性,而把那无辜的主钉在十字架上。

张大卫牧师常将彼拉多、耶稣和犹太群众之间的冲突,对照当今教会和基督徒的处境。他强调:耶稣依旧在见证真理,可问题在于,教会是否愿意“属真理”而听祂声音?或者像当时的犹太宗教领袖一样,与世间权势勾结,反倒把真理拒之门外?过去犹太领袖为了守住既得利益而将耶稣送上十字架,今天的教会若只追逐虚名、财富或地位,也可能陷入同样的危险。张大卫牧师深切告诫:耶稣所彰显的真理权柄,不是为了推翻某个政权,而是要在罪恶深重的人类中赐下拯救与生命;那些不属真理的人终究会背离或利用权力满足私欲。可是,属真理的人——真把耶稣当王的人,则会在任何情境下努力效法主所示范的“不是出离世界,而是带着神国的真理进入世界,散发光亮”。

巴拉巴被释放、耶稣被钉十字架的场景,对现代社会也有强烈警示。人群有时会把希望寄托在拥有暴力或极端手段、能“推翻现有秩序”的人物身上,满足他们对“革命”或“快意恩仇”的幻想。然而,耶稣并不藉此改变世界。祂乃是“凭圣灵的大能,彰显父神的统治”。十字架上,耶稣看似失败的王,却在复活之后证明自己战胜了死亡。故而,属耶稣的人也应当走与世人不同的道路。张大卫牧师在讲道时也常引述保罗所说:“我们并不是与属血气的争战,而是与那些执政的、掌权的、管辖这黑暗世界的、以及天空属灵气的恶魔争战”(参弗6:12)。神国不是通过政治斗争或势力分配来建立,而是在持守真理、实践爱心,并依靠圣灵大能的过程中不断扩张。

需要强调的是,“我的国不属这世界”并不等于让信徒离开或逃避社会。福音书里,耶稣也曾为门徒祈求:“我不求你叫他们离开世界,只求你保守他们脱离那恶者”(约17:15),这说明主并不希望信徒退缩或躲避,反而要他们在世界中却与世界的恶切割。同时耶稣还说:“父怎样差我到世上,我也照样差他们到世上去”(约20:21)。也就是说,我们这些神国子民,受召要进入世人当中,传播福音、放射光芒。张大卫牧师提醒,如果基督徒退到自己的小圈子里,自以为圣洁而与社会隔绝,那么耶稣所背负的十字架之使命就被淡化了。我们必须谨慎地保持圣洁,又带着爱和怜悯,被差派到世界去。

然而,想要真正分辨并持守“真理”,对教会和信徒来说并非易事。当年的犹太领袖们,自诩遵行神的律法,守候弥赛亚,却在真弥赛亚面前拒绝并亵渎祂。因为耶稣的真理,揭穿了他们伪善的宗教外表和对权势的贪恋。今天的教会若也重蹈“宗教化、形式化、与世俗利益结盟”的覆辙,就同样无法听见主的声音。我们可能也会像彼拉多一样问:“真理是什么?”却忽略身边的主。结果任凭耶稣站在面前,我们却与真理擦肩而过。

因此,张大卫牧师再三呼吁:教会必须不断自省,回到福音的本质。彼拉多审问耶稣一幕,实质上问着所有基督徒:“你到底属于哪个王?”若我们只求世间的影响力、名誉与享受,就会错过真理的声音;但若我们真领会了耶稣在地上“为真理而活、因真理被钉”的方式,就会懂得十字架上的顺服与舍己才是这个真理的核心。神的国度,不是借着阴谋与斗争,而是借着主动的牺牲与事奉,以及圣灵的工作而逐渐扩展。与鼓动民变、靠血气行事的巴拉巴截然不同,耶稣的方式才是通往复活与永生的正途。

现今社会里,基督徒若要效法耶稣在彼拉多面前的样式,意味着即使被讥讽、被辱骂、被诬陷,也要遵行神的旨意,坚持真理与爱。若世人问:“你们口中的国度是哪一个?你们宣称的王是谁?”我们应当像耶稣一样,大胆且清晰地宣告:“我的国不属这世界;耶稣基督是真理之王,我们的主权源于祂。”这宣告不仅停留在口头,更要在生活中体现出耶稣的谦卑、温柔、舍己与爱时,才会产生可信度。

张大卫牧师在讲解彼拉多审问的经文时,也反复提到这事件中的“代赎”属性。耶稣在彼拉多面前虽被宣称无罪,却仍然被处死,以无辜之身替我们罪人承担刑罚。若耶稣自己有罪,就不可能成为替罪的祭物;也正因祂完全清白,才可使罪人得洁净。这是上帝非凡的爱,也是道成肉身的基督所展现的自我牺牲。张大卫牧师常在讲道里说:“耶稣站在世俗审判台上,实际上是为了免去我们在罪恶审判中的刑罚。”基督徒就是要相信并接受这爱,以此获得救恩,并在生活中也效法这爱的方式。

回到现实,我们该如何理解“耶稣的王权”与“世间权势”的冲突?也许多数情况下,并不会像耶稣当年那样演变成政治迫害或法庭争斗,但在职场、校园、日常生活中,暗藏着种种不符合真理的诱惑与压力。若跟随世界的方式,我们可能会撒谎、剥夺弱者权益来获取好处;但基督徒该拒绝这样的模式,并学习耶稣那样,在面对不公或冤屈时,仍选择温柔与爱。的确不易走,但这正是耶稣的十字架道路。张大卫牧师也说:“当今世界会嘲笑或否定‘耶稣是王、真理存在’,但若我们依然坚持真理,并付出必要的代价,最后就会与主一同经历复活与永生,分享神国的荣耀。”

教会内部也可能重演彼拉多与犹太领袖的错误:若教会只追求表面上的繁盛与活动,追逐教势的扩张,却丢失真理与爱,那么就像高喊“主啊,主啊”却不照主旨意而行(太7:21)的虚假群体。彼拉多在听到耶稣说“我为真理而来”后,尽管心里钦佩,却还是因政治考量无视祂;犹太领袖更在外表敬虔下拒绝主的实质。这样的场景提醒我们:世俗权力结构如何与假宗教联手排斥真理,而耶稣又如何面对它们,实践真正的爱与顺服。张大卫牧师因此警戒说:“我们每一天都要站在彼拉多的问题面前——‘真理是什么?你到底归属哪位王?’”对基督徒而言,只能坚定地回答:“我是属真理的,因此我听耶稣的声音;祂是我的王。”且这样的宣告要在我们的言行中有所见证,无论在教会,还是在社会,都要让人看到基督的真理和爱。

彼拉多的审问,不仅让我们看见耶稣的清白,也让我们看见祂在罪恶与虚伪的重重逼迫中走向十字架,且在上帝的救恩之计中完成使命。耶稣被钉后第三日复活,宣告祂胜过死亡,宣告神永恒国度已临到,也印证了何谓真正的权能、何谓真正的君王。只有跟随这位王,并聆听祂真理声音的人,才能得到脱离罪与死的生命。

对基督徒而言,这段经文再次提醒“在世界,却不属世界”的身份。也激励我们要紧握耶稣所见证的真理,像张大卫牧师常强调的,现今仍有许多人在问:“真理是什么?”却不愿真心走近主面前。甚至教会自身,也可能像从前的犹太领袖般被功利主义与形式主义吞噬,从而成为抵挡真理的一方。故而我们要常常回到圣经与圣灵的同在里,与主同行。并且在面对世间权势时,要像耶稣那样勇敢宣告:“我的国不属这世界。”这并非号召逃离人群,而是指一种天国子民的坚定立场,让我们在世界中传扬福音、彰显真理,成为那真正带来转化的光和盐。

彼拉多的审问场景,也显示耶稣亲口见证“自己乃是真理的王”,而彼拉多与犹太宗教领袖却或拒绝或漠视祂,于是他们自己的罪就更明显地暴露出来。但最终,耶稣的十字架成了上帝救赎大业的关键环节。通过耶稣,我们才得以认识真理并在真理里得自由。因此,我们当时刻牢记耶稣所言:“凡属真理的,就听我的声音。”并如张大卫牧师反复勉励的那样,“务要让真理之王耶稣在我们的生命中掌权”。同时也要跟随祂,谦卑地进入世界,在那里以福音之光照亮人群,引导那些仍在困惑中寻找“真理是什么”的人,真正认识到——“真理就是主耶稣基督”。这正是从彼拉多审问的记载中,我们今天所领受的重大启迪与使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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真理の光 – 張ダビデ牧師


1. ピラトの尋問に示された理と

イエス様がピラトのもとへ引き立てられ尋問を受けられた場面は、福音書の中でもヨハネの福音書18章後半から19章前半にかけて具体的に記録されています。この場面はイエス様の公生涯の最後、すなわち十字架にかけられて死なれる直前の裁判過程で起きた、劇的かつ神学的に非常に重要な事件です。本テキストは、イエス様が捕らえられた後、大祭司たちとユダヤ人の宗教裁判を経てローマ総督ピラトの前に立たれた姿を描いています。特にピラトの尋問の過程で示されるイエス様の言葉と態度、そしてそれを受け止め反応するピラトの態度は、「真理」とは何かを劇的に示すと同時に、ユダヤ人の大祭司や宗教指導者たちの持つ罪性、さらに群衆の悪しき集団心理がどのような結果を生み出すかを余すところなく暴露しています。

イエス様はピラトの前に立たれた時点で、すでに宗教指導者たちに捕らえられて夜通しの尋問を受け、「神の子だと自称することによる神性冒涜罪」を着せられた状態でした。しかし、ユダヤ人は自分たちの宗教的な慣習や律法のみではイエス様を死刑に処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ため(ヨハネ18:31)、ローマ総督ピラトの死刑判決を得ようとして彼を引っ張ってきたのです。ローマ帝国から権力を委任され、エルサレムと周辺地域を統治する立場にあったピラトにとって、ユダヤの地で死刑を執行するには自分の許可が必要な状況でした。

このときピラトがイエス様に最初に向けた質問は、「おまえはユダヤ人の王なのか」というものでした(ヨハネ18:33)。これは、ユダヤの指導層がイエス様を告発した罪名が「自分をユダヤ人の王だと自称してローマに反逆する者」というふうに改ざんされていたためでもあります。しかしイエス様の答えは、ご自分がこの世の王、すなわち現世の政治的権力としての王ではないことを明確に示すものでした。イエス様は「わたしの国はこの世に属するものではない」(ヨハネ18:36)と仰ることで、ローマの制度やユダヤ人が考える政治的構造の中で王位を得たり、武力によって統治権を握ろうとする意図がまったくないことをはっきりさせたのです。これはピラトにとって非常に重要な証言でした。ローマ総督として彼が最も警戒すべき相手は反逆者、すなわちローマ帝国に害を及ぼす政治犯だからです。ところがイエス様は、ご自分の追い求める王国はピラトが属する政治秩序や世俗的権力の領域には属さない、と強調されました。

イエス様のこのお言葉は、大きく二つの次元で深い意味を持ちます。第一に、イエス様の国は永遠の神の国、すなわち真理と愛の統治が実現する領域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現世の政治や軍事力に頼るのではなく、むしろ罪と死の権勢から人間を解放する救いと永遠のいのちを司る神の国が、イエス様の国であり、その王権が及ぶところなのです。第二に、ピラトが「ユダヤ人の王」という概念にこだわり、イエス様を反逆者とみなす可能性をイエス様があらかじめ遮断された点です。ピラトの立場からすれば、「もしイエスという人物が本当に政治的反逆を企む人物であったなら、その弟子たちがローマ兵と戦ったはずだが、そんなことは起きなかった」というイエス様の説明に、ある程度納得した可能性があります。イエス様はこう仰いました。「もしわたしの国がこの世に属していたならば、わたしのしもべたちはわたしがユダヤ人に渡されないように戦ったことであろう」(ヨハネ18:36)。ここには「ローマに反逆していない」という点を示す二重の意味が含まれています。つまりイエス様の国は暴力によって維持・拡大される世の王国とは本質的に異なり、ピラトが危惧する政治的反逆者の姿とはまったく無縁であることを宣言されたわけです。

こうしたイエス様の発言を受け、ピラトは再び「では、おまえは王なのか」(ヨハネ18:37)と尋ねます。これは「本当に自分を王的権威を持つ者だと確信しているのか」という問いです。ピラトはイエス様の語る「別の世界の王国」が具体的にどのような性格を帯びているかは把握できなかったでしょうが、その言葉を聞いた瞬間、イエス様の内に政治犯の姿ではなく、まったく次元の異なる権威と真理が現れていることを感じ取った可能性が大きいのです。イエス様の答えも再び要点がはっきりしています。「あなたが言うとおり、わたしは王である。わたしはそのために生まれ、そのためにこの世に来たのです。すなわち真理に対して証しをするためです。真理に属する者は皆わたしの声を聞きます」(ヨハネ18:37)。ここでイエス様が強調されたのは、ご自分こそ真理であることの宣言と、この地上に来られた目的が「真理について証しするため」であるという点です。そしてこの真理を聞き、悟ることができるのは「真理に属する者」であると仰いました。

「真理に属する者はイエス様の声を聞く」というお言葉は、非常に重要な神学的・霊的原理を含んでいます。つまり、いくら高い教育を受けていようと、どんなに高い宗教的地位を持っていようと、あるいはどれほど政治的に強力な権勢を持っていようと、真理を知らないならばイエス様の声を悟ることはできないということです。一方で、もし本当に神の御霊によって心が開かれ、へりくだって真理を求めるならば、ローマの総督であれガリラヤの片隅に住む人であれ、誰であろうとイエス様が宣言された言葉を「王なるお方の真理」として受け入れ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しかしピラトは、この発言に対して「真理とは何か」(ヨハネ18:38)と問い返しただけで、イエス様の答えを待たなかったとヨハネの福音書は伝えています。ピラトがすでに真理に関心のない者、あるいは真理を聞く余裕のない政治家であったことを示唆する一幕でもあります。

その後ピラトは、ユダヤ人の群衆に対して「わたしはこの人に何の罪も見いだせない」(ヨハネ18:38)と二度にわたって宣言します。彼にとってイエス様を死刑に処すべき根拠はありませんでした。さらに、ピラトはイエス様の言葉に直接触れる中で、「この人は政治的反逆者ではなく、何か尊厳と純潔さを感じさせる人物だ」と思った可能性が高いのです。実際、「この人に罪を見いだせなかった」と公言したこと自体が彼の判断でした。しかしユダヤ人指導者と群衆は執拗にイエス様の処刑を求め、イエス様の代わりに凶悪犯バラバを釈放せよ、とまで要求しました(ヨハネ18:40)。バラバは強盗であり、反乱の扇動者であり、殺人者でした(マルコ15:7、ルカ23:19、使徒3:14)。ローマから見ても明白な死刑対象となる凶悪犯だったのです。しかし宗教指導者たちはピラトを揺さぶることで、イエス様を殺す方向へ裁判を流していくよう集団的な煽動を続けました。

ピラトはイエス様を無罪放免にしたいと思っていながらも、ついには群衆の圧力と政治的事情、そして「この男を釈放するなら皇帝(カイサル)の忠臣ではない」(ヨハネ19:12)という脅しに揺さぶられます。結局彼は、イエス様を十字架に引き渡す前に、せめて鞭打ちのような厳しい処罰を加え、群衆の怒りをなだめようと試みました(ヨハネ19:1)。さらに茨で編んだ冠をイエス様の頭にかぶせ、紫の衣を着せて嘲弄させました(ヨハネ19:2–3)。ピラトはこれで民衆の怒りが収まり、イエス様を生かせると思ったかもしれませんが、それどころか群衆はますますイエス様を十字架につけろと叫ぶようになります。

結局、ピラトの尋問は、世の権力者の目にもイエス様には罪がないことを明らかにする過程となりましたが、その無罪なる主が結局、人間の悪意と宗教的偽善、政治的妥協の中で死刑を宣告されるという逆説を映し出します。ピラト自身も「わたしはこの人に罪を見いだせない」と三度も宣言しましたが(ヨハネ18:38、19:4、19:6参照)、ついに十字架刑を宣告するのです。ヨハネはこの過程を通じて、イエス様が不当なかたちで殺されたこと、しかし同時にこの死が単なる無念さを超えて神の贖いのご計画のうちにあることを示そうとしたのです。

このように、ヨハネの福音書に記されたピラトの尋問シーンから浮き彫りになる核心のメッセージは、第一にイエス様に罪がなかったという事実です。ローマ総督ですら「この人に罪を見いだせなかった」と告白せざるを得なかったという劇的な対比を通じて、イエス様の潔白が歴史的に証明されます。第二に、イエス様は政治的反逆者でも世の王でもなく、真理の王であり神の国の統治者であるということです。「わたしの国はこの世に属するものではない」という主のお言葉は、今日のクリスチャンのアイデンティティがどこに基づくべきかを示す重要な基準となります。第三に、真理がかえって偽りの宗教権力や政治的妥協によって排斥される逆説が浮き彫りになります。ユダヤ人の宗教指導者たちは表向きには神を信奉しメシアを待望すると言いながら、実際にメシアが来られると自分たちの宗教的既得権を守るために神の御子を処刑する先頭に立ちます。こうしてこの場面は、「真理が現れるとき、むしろ偽りと偽善が暴かれ、裁かれる」という事実を端的に視覚化するのです。

張ダビデ牧師は、このピラトの前に立たれたイエス様の姿を通じて、私たちの信仰が本質的に進むべき方向と姿勢を深く黙想すべきだと強調します。特にイエス様が「真理について証しをするために来た」(ヨハネ18:37)と仰った言葉を踏まえるとき、今日の教会や信徒が世の権力の前でどのような態度を取るべきかを考えなければならない、と述べています。張ダビデ牧師はよく「イエス様の真理の王権」という概念を語りますが、これは決して世の権力と衝突したり対立を煽るためのものではなく、罪と死と偽りに汚れた人類に「いのちを与える統治者」として来られたイエス様の立場を認識すべきだという教えです。真理に属さない者たちはイエス様の声を聞かず、結局は世の権力に屈服したり、それを利用して自分たちの欲望を満たそうとするでしょう。しかし真理に属する者、すなわち真にイエス様を王として認めるクリスチャンたちは、どのような状況でも主が示された姿、すなわち「神の国は世に属さないが世の中に臨み、真理を宣言する」という姿勢を見習うべきだと教えられています。

https://www.youtube.com/watch?v=2fuLEttN1gs

このようにピラトの尋問の場面は、イエス様の無罪性が明かされると同時に、それにもかかわらずイエス様が苦難を受け入れ、十字架へと向かわれる贖いの道を歩まれる過程を要約的に描き出します。クリスチャンがこの本文を黙想するとき、イエス様が教えてくださった真理、すなわち愛と赦し、そして神の国への確信が現世の権力者や宗教的既得権者たちとは全く異なる次元に属するものであることを悟らされます。世がイエス様を正しく理解しなかったように、今日でも真理に属さない多くの人々は真の福音の声を聞こうとしなかったり、むしろ排斥することさえあります。それでもイエス様は最後まで真理を宣言され、その真理ゆえに十字架にかけられます。一見愚かに思えるこの神の方法こそが、人間を救うための唯一の道でした。ですからピラトの前に立つイエス様の厳かながらも柔和な姿には、のちに復活を通じて証明される勝利の芽が秘められていた場面でもあるのです。

ゆえに、ピラトの尋問はクリスチャンの歩むべき道が世の権力といかに区別されるかを示しています。世の王権は主に暴力や威圧、政治的策略、軍事力、経済力で築かれ維持されます。イエス様の時代のローマ帝国が典型です。これに対してイエス様が示された「神の国」は、外見上はいかにも無力に見え、十字架のような恥辱的処刑道具によって終わるかのように見えます。しかしその内側には復活と永遠のいのちの力が宣言され、真の自由が与えられます。ここにこそ、ヨハネが劇的に際立たせるイエス様の「真理の王権」があるのです。


2. 世の力と神のの緊張

イエス様がピラトに言われた「わたしの国はこの世に属するものではない」(ヨハネ18:36)という言葉は、歴史を通じて実に多くの解釈と適用を生んできました。ある時代には、この聖句が教会と世を完全に分離する根拠として用いられたこともあります。一方、別の人々は、世の政治・経済・文化領域を変革することこそ神の国の拡大だと主張し、積極的な参加や介入を訴えたこともありました。しかし本文の文脈で「わたしの国はこの世に属するものではない」という言葉は、イエス様がピラトの政治的関心やユダヤ宗教指導者の枠に縛られない次元の統治者であることを宣言されたものです。イエス様の目的と方法は、世が理解したり模倣したりできない真理に基づきます。世の権力者はこの真理を支配の手段としてではなく、自らの政治的・経済的利益と欲望を貫徹するために利用しようとするものです。しかしイエス様は「真理に属する者だけがわたしの声を聞く」と断言し、この真理が人々の表面的地位や能力と無関係であることを明らかにされました。

この真理と世の権力の緊張関係は、福音書全体を貫いて繰り返し示されています。イエス様は公生涯の間、絶えず宗教権力と衝突され、最終的には世俗の権力者であるピラトの裁判を経て十字架にかけられました。それが最も顕著な例です。しかし皮肉なことに、イエス様に十字架刑を宣告したピラトは、裁判過程で三度も「イエスには何の罪も見いだせない」と告白しました。これはつまり、世の権力ですらイエス様の無罪と清さを認めざるを得なかったことを示しています。それにもかかわらず、イエス様は政治的策略や武力動員によってご自分を守ったり、ピラトに対抗したりはなさいませんでした。沈黙の中で鞭打ちや侮辱を耐え忍ばれたのです。そこに、イエス様がもっておられる王権が、世の権威者たちが追い求める力とは全く異なる次元に属しているという点が際立って表れます。

ユダヤ人の指導者たちと群衆は、なぜそこまでイエス様を殺そうとしたのでしょうか。それはイエス様が神殿の体制を揺さぶり、彼らの宗教的偽善や権威主義的行動を暴かれたからです。特にイエス様は、人々を抑圧し教える者たちの偽善をすべてあぶり出されました。これによって宗教権力者たちは、イエス様を除去しなければ自分たちの地位を維持できないと判断したのです。最終的に彼らは、ピラトに「イエスはローマに反逆する者だ」と中傷し、十字架刑を宣告するよう集団的圧力をかけました。これは、表向きは宗教的熱心を掲げながらも、実際にはメシアを排斥する行為です。イエス様が語られた真理が、そのままに現れたわけです。ピラトが「真理とは何か」と問いながら、結局は真理であるイエス様に対面してもそれを認めず、あるいは認めようとしなかったように。逆にイエス様は、このすべての人間の悪を越えた救いのご計画を抱いて十字架へと進まれたのです。

この場面をめぐって、多くの神学者たちは「ピラトの究極的責任とユダヤ人指導者の責任をどう釣り合わせるか」を議論してきました。いったい誰がイエス様を殺したのか。実際、福音書はイエス様の死が単なる宗教的・政治的陰謀や法廷裁判の結果だけでなく、人間の罪全体を贖うための神の定められた救済事業だったと証言します。イエス様が本当に罪のないお方であるにもかかわらず、人類の罪を負って死ぬことによって罪人を生かされるという神のご計画です。ピラトとユダヤ宗教指導者は、その贖いの歴史を成就させるための道具にすぎません。しかし、だからといって彼らの罪責が免除されるわけではありません。彼らは欲望と利益、恐れなどによって「罪なき方」を殺す罪を犯したのです。同時にそれは、すべての人間が等しく持っている罪性を象徴してもいます。つまり誰もが、自らの悪によってイエス様を十字架につけることに加担したともいえるのです。

張ダビデ牧師は、ピラトとイエス様、そしてユダヤ人の群衆のあいだで行われたこの論争と尋問の過程を、現代の教会とクリスチャンの生活に適用すべきだと説きます。そのメッセージによれば、イエス様は今も「真理について証しする」ことをやめておられません。問題は、教会または信徒が真理に属するか、それとも世の権力と結託して真理をないがしろにするかです。昔のユダヤ人宗教指導者たちが、自分たちの既得権維持と欲望のためにイエス様を排斥した姿は、現代の教会の中でも再現されうるという指摘です。すなわち、人間的名誉や財産、教権、あるいは社会的地位などを失いたくないために福音の本質を損なったり、十字架の道を否定しながら、表面的には宗教的熱心を装う場合がそうです。張ダビデ牧師はこれを非常に警戒し、「イエス様が示された真理の権威とは世を転覆したり排斥することではなく、そのただ中で罪人を愛し、仕え、救おうとするものである」と繰り返し強調しています。

バラバを釈放してイエス様を十字架につけた群衆の選択も、現代社会に大きな示唆を与えます。人々はときに暴力を行使し、現実の政治や社会体制を覆そうとする過激な人物を通じて、自分たちの鬱憤を晴らしたり欲望を投影したりします。バラバのような反乱の扇動者は、群衆にとって痛快さをもたらすかもしれず、「今こそローマを倒し、私たちの望む新しい体制を作ってくれるだろう」と期待を抱かせるかもしれません。しかしイエス様は、そのような暴力によって世を変えたりはなさいません。主が王として来られた国は、父なる神のご統治が聖霊の力によって臨む国なのです。十字架にかけられた姿は、一見敗北した王のように見え、無力な犠牲者のように映りますが、復活後には死に打ち勝つ勝利の王として現れます。したがってイエス様につながる者たちは、世の価値観や方法論とは異なる道を歩ま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を示唆しています。張ダビデ牧師もまたこれを繰り返し説教し、「私たちの戦いは血肉に対するものではなく、支配者たちや権威ある者たち、この暗闇の世界の支配者たちに対するものである」(エペソ6:12)という使徒パウロの言葉を引用します。目に見える政治的対立や勢力争いによって神の国が実現するのではなく、真理を堅く握り、愛を実践し、聖霊の力によって進んでいくときに神の国が広がっていくのだ、と。

さらに「わたしの国はこの世に属するものではない」というお言葉は、信徒が世から完全に分離・隠遁せよという意味ではありません。ヨハネの福音書の別の箇所を見ると、イエス様は弟子たちのために祈られる際に「わたしが願うのは、彼らを世から取り去ることではなく、悪に陥らないように守っていただくことです」(ヨハネ17:15)と仰いました。これは世の中で生きながらも、その価値観に染まることなく、主の真理と御霊の力によって区別された生き方をするように、という意味です。同時にイエス様は「父がわたしをお遣わしになったように、わたしもあなたがたを世へ遣わします」(ヨハネ20:21)とも仰いました。つまり神の国の民である私たちが、世のただ中に派遣されて福音を伝え、真理の光を照らすように召され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張ダビデ牧師は「イエス様の弟子たちが世を離れ、自分たちだけの領域を作るなら、イエス様が十字架を負われた意味がかすんでしまう」としつつ、聖なる区別を保ちながらも世へと派遣され、キリストの愛と真理を証しすべきだと力説しています。

ここで重要なのは、いくら教会や信徒にとって「真理を正しく見分け、堅持することが当然」に見えても、実際にはそう簡単ではないという事実です。ユダヤ人指導者たちも「神の律法を守る」という熱意を持ち、「メシアを待ち望む」と公言していました。しかし本物のメシアが来られたときには、その方を認識できず、むしろ敵対し、偽りをもって陥れ、殺そうとしました。なぜならイエス様の真理は、彼らが享受していた宗教的既得権や偽善を暴いたからです。今日も同じです。教会が形式的な宗教生活に安住したり、世俗的利益と結託したり、イエス様が示された真の真理を実践するより自分たちに都合のよい道を選んだりすれば、主の声を決して聞くことはできません。結局のところ、ピラトのように「真理とは何か」と問いつつも、目の前にいるイエス様を認識できずに通り過ぎてしまうのです。

だからこそ張ダビデ牧師は、教会が自らを省み、いつも福音の本質へ立ち返るべきだと訴えます。ピラトがイエス様を尋問する場面は、クリスチャンに対して「いったい私たちはどの王に属しているのか」という問いを突きつけます。世の影響力や名誉、物質、あるいは便利さを追い求めて真理の声を無視してはいないか、「イエス様がこの地上で王として働かれる方法」を本当に理解しているのか、十字架を通して明かされた愛と従順を真理の核心として握っているのかを、改めて点検する必要があるのです。その方の国は武力や策謀ではなく、自発的犠牲と奉仕、そして御霊の業によって広がっていきます。これが、帝国の力や群衆心理に頼り反乱を企てたバラバとの決定的な違いです。

現代社会でクリスチャンがピラトの法廷の前に立つイエス様の姿に倣うということは、人々の嘲りや蔑み、あるいは不当な誹謗を受けたとしても、神の御心に従って真理と愛を守り抜く姿勢を意味します。同時に世の権力者が「あなたがたの言う国とは何か」「あなたがたの言う王とは誰か」と問うときに、イエス様のように大胆かつ明確に「わたしの国はこの世に属す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真理に属する王であるイエス・キリストこそ私たちの主権者です」と告白できねばなりません。それが世にあって神のご統治を示す道です。そしてこの告白は言葉だけではなく、イエス様が示してくださった謙遜と柔和、愛と犠牲が実際の生活に表れるときにこそ、信頼を得られるものとなるのです。

特に張ダビデ牧師は、ピラトの尋問を教える際、イエス様がすべての罪と偽りの裁きをご自分で負ってくださった「代償的性格」を強調します。イエス様はピラトにも「無罪」と宣言され、一度たりとも罪を犯さなかったお方でした。それにもかかわらず十字架で死なれたことで、罪人である私たちが罪から解放される道を開いてくださったのです。もしイエス様に罪があったならば、十字架は代償の出来事となりえなかったでしょう。しかし「何の罪も見いだせなかった」主が死なれたことで、潔白なる犠牲を通して私たちの罪を背負ってくださいました。これは神の超越的な愛であり、同時に受肉されたキリストの自己犠牲でもあります。張ダビデ牧師は説教の中でしばしば「世の権力の法廷に立たれたイエス様は、実は私たちが罪の裁きを受けなくて済むように代わりに立ってくださった方」と語ります。クリスチャンになるということは、この愛を信じ受け入れてイエス様が施してくださった救いにあずかるとともに、その愛の生き方にならって生きることにあるのです。

では実際の生活において「イエス様の王権」と「世の権力」の衝突はどのような形で現れるでしょうか。たいていの場合、大きな政治的迫害や法廷闘争にまで発展しないかもしれませんが、職場や学校、日常の中にあって真理に反する誘惑や妥協の圧力は常に存在します。クリスチャンは世のやり方に倣って自己の利益のために偽りを使ったり、弱い人を踏み台にしてのし上がるような行動を拒まねばなりません。さらに、ときに不当な非難を受けても、イエス様のように最後まで愛と柔和の姿勢を貫く必要があります。これは決して容易な道ではありませんが、十字架の道を歩まれたイエス様に従う姿といえます。張ダビデ牧師は「世が『イエスは王ではない、真理など存在しない』と叫ぶ声に直面しても、イエス様の真理を握る者として生きるには苦難が伴う。しかしその道の果てに、わたしたちは主の復活と永生、すなわち神の国の栄光にあずかる」と強調します。

さらに、教会共同体の内部においても、ピラトやユダヤ宗教指導者の姿が繰り返される可能性があることを直視すべきです。華やかな礼拝やプログラム、教勢拡大に熱中するあまり、肝心の真理と愛を失ってしまうなら、その教会はイエス様の声を聞けない群衆と変わらなくなるかもしれません。表面では「主よ、主よ」と言いながら(マタイ7:21)、実際にはイエス様を十字架に釘打つのと同然の行いをしている場合もありえます。これは非常に恐ろしいことです。ピラトはイエス様が「真理について証しをするために来た」という言葉を聞きながらも、自らの政治的打算ゆえに真理が誰なのか、あるいは何なのかを正しく知りえませんでした。そして結局、イエス様を釈放したい気持ちがありながらも群衆の圧迫に屈して、罪なき方を死刑に処しました。イエス様当時のユダヤ指導者たちも同様です。外面では律法を徹底して守りながら、イエス様が明らかにした神の真の御心を見ようとせず、拒んだのです。

こうした一連の物語は、世の権力の構造の中で生じる不正と真理への排斥、そして宗教的偽善がどのように作用するかを示しつつ、イエス様がそのただ中でいかに真の真理と愛を実践されるかを教えています。張ダビデ牧師はこれを通じて、「私たちは日々ピラトの問いかけの前に立たされている」と語ります。「真理とは何か」という問い、そして「おまえはどの王に属しているのか」という問いの前で、クリスチャンは「私は真理に属する者です。それゆえイエス様の声を聞き従います。イエス様こそ私の王です」と答えねばなりません。そしてその告白が生活のスタイルとして表され、私たちが属する教会共同体の中でも、また私たちが身を置く社会の中でも、イエス様の真理と愛を実行していく必要があるのです。

ピラトの尋問の場面から私たちは、イエス様の無罪性と真理の王権を見出します。そしてユダヤ人指導者やピラトが、偽りと恐れ、自己中心の思いによってイエス様を十字架に追いやる姿から、人間の罪性と愚かしさを見出します。しかし同時に、イエス様の十字架が私たちに与える救いが神の聖なるご計画の成就であることを目撃します。イエス様は十字架にかけられ、復活されることで死に勝利し、永遠の神の国を宣言されました。ここにこそ、真の権威とは何か、まことの王は誰かが示されます。この王であるイエス様を信じ従う者だけが、ピラトが知らなかった真理を悟り、罪と死に打ち勝ついのちにあずかることができるのです。

クリスチャンにとってこの本文は、「世の中にありながら世に属さない」アイデンティティを思い起こさせるとともに、真理を宣べ伝えるために来られたイエス様にならって私たちも人生を捧げるべきだと促します。張ダビデ牧師がよく言及するように、現代でも多くの人が「真理とは何か」と問いながらも、真の真理そのものであるイエス様のもとへは来られずにいます。教会もまた、時に世の権力と結託してイエス様を排斥した当時のユダヤ人指導者のように変質する危険を抱えています。ですから私たちは常に御言葉と御霊のうちに主と共に歩み、世の権力の前で堂々と「わたしの国はこの世に属するものではない」と宣言すべきなのです。これは世を離脱するという意味ではなく、世の価値観に揺さぶられない天国市民としての揺るぎない姿勢を持つこと、同時に世のただ中に福音の光をもたらし、真の変革をもたらす使命を果たすことを意味します。

ピラトの尋問の場面は、イエス様がご自分こそ真理の王であると証しされた出来事であり、ピラトやユダヤ人指導者たちはそれを拒んだり知り得なかったことで、自らの罪が暴露された出来事でもあります。しかし最終的には、イエス様の十字架が神の贖いの計画を完成する通路となり、私たちはイエス様によって真理を知り、自由にされる道を得ました。ですから「真理に属する者はわたしの声を聞く」というイエス様のお言葉を握り、張ダビデ牧師が繰り返し勧めるように、真理であるイエス様を人生の王としてお迎えする信仰を守り続けるべきなのです。そしてこの王である主に従い、へりくだって世の真っただ中で福音を宣べ伝え、実践することを通じて、世の人々も「真理とは何か」という問いから一歩進んで、「真理こそイエス・キリストである」という発見へと導かれるよう、私たちがその役目を果たさねばなりません。これこそが、ピラトの尋問の場面を通して今日の私たちが受け取る力強いメッセージであり課題な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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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ght of Truth – Pastor David Jang


1. The Truth and Authority Revealed in Pilate’s Interrogation

The account of Jesus being brought before Pilate and interrogated is recorded in detail in the latter part of John 18 through the beginning of John 19. This scene takes place near the end of Jesus’ public ministry, just before He is crucified, making it an event of great dramatic and theological significance in the passion narrative. The text depicts how, after Jesus was arrested and tried before the Jewish religious leaders, He was taken to the Roman governor, Pilate. In particular, the exchange that unfolds during Pilate’s interrogation reveals, in a dramatic way, what truth is. At the same time, it also exposes the sinfulness of the Jewish high priests and religious leaders, as well as the destructive power of a frenzied mob.

By the time Jesus stood before Pilate, He had already been arrested by the religious leaders, interrogated overnight, and charged with blasphemy for claiming to be the Son of God. However, because the Jews, according to their customs or law, could not execute a capital punishment on their own (John 18:31), they brought Jesus to the Roman governor, Pilate, to secure a death sentence. As the official appointed by the Roman Empire to govern Jerusalem and its surrounding regions, Pilate held the authority to carry out executions in Judea.

When Pilate first meets Jesus, he asks, “Are You the King of the Jews?” (John 18:33). This was partly because the Jewish leaders had twisted the charge against Jesus to portray Him as someone who claimed to be “the King of the Jews,” thereby committing treason against Rome. But Jesus clearly indicates that He is not a king in any earthly, political sense. He says, “My kingdom is not of this world” (John 18:36), underscoring that He has no intention of seizing the throne through Rome’s political systems or the Jewish people’s existing political structures, nor of ruling by force. For Pilate, this was a critical statement, because as a Roman governor, what he most feared was a rebel—a political criminal who might threaten the Roman Empire. Yet Jesus emphasized that the kingdom He pursued did not belong to the political order or sphere of authority that Pilate represented.

Jesus’ words carry profound meaning on two levels. First, His kingdom is the eternal kingdom of God, a realm of truth and love. It does not rely on earthly political or military power; rather, it is the kingdom of God that liberates humanity from the powers of sin and death, offering salvation and eternal life. Second, Jesus preemptively countered any attempt by Pilate to interpret “King of the Jews” as evidence of a political rebellion. From Pilate’s standpoint, if Jesus were indeed a revolutionary, His disciples would have fought the Roman soldiers instead of allowing Him to be handed over to the Jews—an explanation Jesus offers in a way that likely convinced Pilate to some extent. Jesus says, “If My kingdom were of this world, My servants would be fighting so that I would not be handed over to the Jews” (John 18:36). Thus, Jesus distinguishes Himself from the worldly kingdoms maintained or expanded through violence and makes clear that He does not fit the mold of a political insurgent Pilate might have feared.

Hearing these words, Pilate again asks, “So You are a king?” (John 18:37). In other words, he is questioning whether Jesus truly possesses some kind of regal authority. Pilate did not fully understand the nature of this “otherworldly kingdom” Jesus spoke about. Yet the moment he heard Jesus’ explanation, he may have sensed that Jesus was not a mere political threat but someone who embodied a different level of authority and truth. Once again, Jesus makes His point clear: “You say correctly that I am a king. For this I have been born, and for this I have come into the world, to testify to the truth. Everyone who is of the truth hears My voice” (John 18:37). Here, Jesus proclaims that He Himself is truth and that the very purpose of His coming into the world is “to bear witness to the truth.” Moreover, only those who “are of the truth” can understand and accept His words.

The statement “Everyone who is of the truth hears My voice” carries profound theological and spiritual significance. No matter how well-educated one may be, no matter how high one’s religious standing, or how powerful one may be politically, if one does not know the truth, one cannot recognize Jesus’ voice. Conversely, anyone whose heart is opened by the Holy Spirit and who humbly seeks truth—regardless of whether that person is a Roman governor or a simple Galilean—can receive Jesus’ declaration as the truth of the King. However, the Gospel of John notes that Pilate responds with, “What is truth?” (John 18:38) and immediately leaves, without waiting for Jesus to reply. This suggests that Pilate, a politician under pressure, had neither genuine interest in nor the leisure to listen to the truth.

Afterward, Pilate announces twice to the Jewish crowd, “I find no guilt in this man” (John 18:38). From his perspective, he saw no justification for putting Jesus to death. Moreover, Pilate himself, having heard Jesus’ words, was likely impressed, concluding that “This man is not a political rebel but seems dignified and innocent.” Indeed, by declaring he “found no guilt,” Pilate showed his own assessment. But the Jewish leaders and the crowd persistently demanded Jesus’ crucifixion, to the point of asking that the notorious criminal Barabbas be released instead (John 18:40). Barabbas was a robber, an instigator of insurrection, and a murderer (Mark 15:7; Luke 23:19; Acts 3:14)—in other words, clearly guilty of crimes worthy of execution by Roman law. Yet, pressured by these religious leaders, Pilate was forced to direct the trial toward Jesus’ crucifixion.

Although Pilate wished to set Jesus free, he eventually gave in to the crowd’s demands, political concerns, and their threat: “If you release this man, you are no friend of Caesar” (John 19:12). Before handing Jesus over to be crucified, Pilate tries to appease the people’s fury by having Him flogged (John 19:1). Then, Pilate’s soldiers mockingly place a crown of thorns on His head and dress Him in a purple robe (John 19:2–3). Pilate may have hoped that by subjecting Jesus to such harsh punishment, the crowd would be satisfied and He might be spared. Instead, they only cried out all the more for Jesus to be crucified.

Hence, Pilate’s interrogation shows that even a worldly authority figure recognized Jesus’ innocence, yet the sinless Lord was ultimately condemned to death in the midst of human malice, religious hypocrisy, and political compromise. Although Pilate himself declared three times that he found no fault in Jesus (John 18:38; 19:4; 19:6), he still sentenced Him to be crucified. Through this sequence of events, the Gospel of John demonstrates that, while Jesus was unjustly condemned, His death was also part of God’s redemptive plan.

From this portion of John, we can glean several important points. First, it underscores Jesus’ innocence. Even a Roman governor declared, “I find no guilt in this man,” offering historical testimony to Jesus’ blamelessness. Second, Jesus was not a political rebel or an earthly king; He is the King of truth and the Ruler of the Kingdom of God. His statement “My kingdom is not of this world” serves as a foundational guideline for Christians today regarding where our identity must be rooted. Third, we see the paradox of truth being rejected by false religious power in alliance with political expediency. The Jewish religious leaders outwardly served God and awaited the Messiah, but when the Messiah finally appeared, they led the charge to kill the Son of God in order to protect their religious privileges. This scene vividly illustrates that “when truth manifests, falsehood and hypocrisy are exposed and judged.”

Pastor David Jang, reflecting on Jesus standing before Pilate, emphasizes that we must deeply ponder the direction and posture our faith should adopt. In particular, Jesus said He came “to testify to the truth,” which raises a vital question for today’s churches and believers: How should we conduct ourselves when facing worldly authority? Pastor David Jang often refers to the concept of “the royal authority of Jesus’ truth,” explaining that it is not meant to clash or contend with worldly powers but rather to recognize Jesus as the life-giving King who came to a humanity steeped in sin, death, and falsehood. Those who do not belong to the truth cannot hear Jesus’ voice and will ultimately bow to worldly power or exploit it to fulfill their own desires. However, those who belong to the truth—those who truly recognize Jesus as King—must strive to emulate Jesus’ example, in which “the Kingdom of God, though not of this world, enters into the world and proclaims truth.”

Thus, the scene of Pilate’s interrogation encapsulates both Jesus’ innocence and His acceptance of suffering on the road to the cross. When Christians meditate on this text, they realize that the truth Jesus proclaimed—love, forgiveness, and assurance of God’s Kingdom—is of an entirely different order from the approach of worldly rulers or religious elites. Just as the world did not truly understand Jesus then, many in our time also do not recognize, or outright reject, the voice of the true Gospel. Yet Jesus continues to proclaim truth to the end, even when it leads Him to be crucified. This seemingly foolish way, the way of the cross, is in fact God’s way of saving humankind. Therefore, the majestic yet meek figure of Jesus before Pilate contains within it the seed of victory, later confirmed by the resurrection.

Pilate’s interrogation reveals how the path of the Christian diverges from worldly power. Earthly kingdoms are built and preserved primarily through violence, intimidation, political scheming, military might, or economic strength. The Roman Empire of Jesus’ day was a prime example. By contrast, Jesus’ “Kingdom of God” may appear powerless on the surface—ending in the shameful instrument of the cross—yet within it lies the proclamation of resurrection, eternal life, and genuine freedom. This is what John dramatically highlights as Jesus’ “royal authority of truth.”

https://www.youtube.com/watch?v=2fuLEttN1gs


2. The Tension Between Worldly Power and the Kingdom of God

Jesus’ statement to Pilate, “My kingdom is not of this world” (John 18:36), has elicited countless interpretations and applications throughout history. In some periods, this verse was used to justify a complete separation between church and the secular world. In others, people have interpreted it as a call to engage actively in society’s political, economic, or cultural spheres, believing that transforming these arenas is tantamount to expanding God’s Kingdom. However, in the immediate context, “My kingdom is not of this world” indicates that Jesus’ authority transcends both Pilate’s political concerns and the Jewish religious leaders’ framework. Jesus’ purpose and method are anchored in a truth that the world does not understand and cannot replicate. Worldly rulers tend to use any notion of truth as a means to advance political or economic self-interest and ambition. But Jesus firmly states that “only those who are of the truth” can hear His voice, emphasizing that one’s ability to grasp this truth is unrelated to superficial status or capabilities.

This tension between truth and worldly power appears repeatedly throughout the Gospels. During Jesus’ public ministry, He constantly clashed with religious authorities, and eventually He was condemned by the secular authority of Rome under Pilate’s judgment, ending on the cross. Yet paradoxically, the very person (Pilate) who sentenced Jesus to be crucified also declared three times that he could find no guilt in Him. This conveys that even worldly power structures had to admit Jesus’ innocence and purity. Nonetheless, Jesus did not protect Himself or rise against Pilate with cunning or force. Instead, He endured flogging and mockery in silence. This underscores just how radically different Jesus’ kingship is from the type of power earthly rulers seek.

Why did the Jewish leaders and the crowd so vehemently seek Jesus’ death? Because He disrupted their temple system and exposed their religious hypocrisy and authoritarian tendencies. Above all, Jesus openly revealed the oppressive and pretentious nature of those who claimed to teach others while indulging in hypocrisy. Feeling threatened that they could no longer maintain their positions of power, these religious leaders concluded that they must eliminate Jesus. Ultimately, they falsely portrayed Him before Pilate as “one who rebels against Rome” and coerced the governor to impose crucifixion by whipping up a collective frenzy. Outwardly, they claimed religious zeal, but in reality, they rejected the Messiah. Pilate, for his part, asked, “What is truth?” Yet he did not truly seek it. Confronted with the very embodiment of truth, he failed to recognize Him. Jesus, on the other hand, continued toward the cross, carrying God’s redemptive plan that surpasses all human evil.

For centuries, theologians have debated the balance of responsibility between Pilate and the Jewish religious leaders: Who ultimately killed Jesus? The Gospels present Jesus’ death not merely as the outcome of a religious or political conspiracy, nor solely a miscarriage of judicial process, but as the fulfillment of God’s plan of redemption to atone for humanity’s collective sin. Though Jesus was entirely without sin, He took upon Himself the penalty of sin so that sinners might be saved. Pilate and the Jewish leaders were merely instruments in that grand design. However, this fact does not absolve them of guilt. Their desires, ambitions, and fears led them to commit the sin of condemning an innocent man. In that sense, they represent the universal human condition, in which each one of us, through our own sinful nature, also participates in crucifying Jesus.

Pastor David Jang stresses that we must apply this confrontation—among Jesus, Pilate, and the Jewish crowd—to the life of the contemporary church and individual believers. According to his message, Jesus continues to “testify to the truth.” The question is whether the church and Christians will align themselves with the truth or whether they will disregard it by colluding with worldly authority. The conduct of the Jewish religious elite, who forsook Jesus to protect their power and privileges while outwardly professing religious devotion, can recur even today within the church. That is, clinging to human fame, property, ecclesiastical control, or social standing while undermining the essence of the Gospel and denying the way of the cross—even as one appears outwardly devout. Pastor David Jang emphatically warns against this, repeatedly underscoring that “the authority of truth Jesus demonstrated does not overthrow or negate the world but instead loves, serves, and saves sinners in it.”

Likewise, the people’s choice to release Barabbas over Jesus holds a profound message for our modern context. Sometimes people vent their frustrations or project their hopes onto extreme figures who advocate for violent measures to topple existing political or social regimes. A revolutionary like Barabbas might offer the crowd a kind of cathartic thrill, fueling the belief, “Now he’ll overthrow Rome and establish a new order we’ve always wanted.” Yet Jesus does not transform the world through violence. The kingdom over which He reigns is a kingdom that the Father administers in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Although, on the cross, He appeared to be a failed, powerless king, the resurrection revealed Him as the victorious King who conquered death. Therefore, those who belong to Jesus must adopt ways unlike those of the world. Pastor David Jang frequently cites the Apostle Paul’s words: “Our struggle is not against flesh and blood, but against the rulers, against the powers, against the world forces of this darkness” (Ephesians 6:12). God’s Kingdom does not manifest through visible political clashes or power struggles, but rather through adherence to truth, the practice of love, and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Moreover, “My kingdom is not of this world” does not mean that believers should completely withdraw from or isolate themselves from society. Elsewhere in John’s Gospel, Jesus prays for His disciples: “I do not ask You to take them out of the world, but to keep them from the evil one” (John 17:15). This implies that although we live within the world, we must remain untainted by its values, sustained by the truth of Christ and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At the same time, Jesus says, “As the Father has sent Me, I also send you” (John 20:21), meaning that we are to be sent into the world to preach the Gospel and shine the light of truth. Pastor David Jang maintains that if Jesus’ disciples were to withdraw and create their own separate enclave, the meaning of the cross would be diminished. Instead, believers must preserve holiness and distinction while being actively present in the world, proclaiming and living out Christ’s love and truth.

However, discerning and holding fast to the truth is not easy, despite seeming like a basic duty for the church and believers. The Jewish leaders had a passionate devotion to “keeping God’s Law” and professed to be awaiting the Messiah. But when the true Messiah came, they failed to recognize Him. Worse, they became hostile and resorted to lies in their efforts to kill Him—because the truth Jesus proclaimed exposed their hypocrisy and religious power structures. The same danger confronts us today. When a church becomes comfortable with external formalities or becomes entangled with secular interests, abandoning the substance of Jesus’ teaching for the sake of convenience, it loses the ability to hear the voice of Christ. Ultimately, like Pilate, it may ask, “What is truth?” while failing to perceive the Truth standing before it.

Pastor David Jang therefore urges the church to reflect upon itself continually and return to the essence of the Gospel. The interrogation scene before Pilate raises the question for every Christian: “To which king do we belong?” Are we chasing after worldly influence, reputation, wealth, or comfort, all the while tuning out the voice of truth? Do we truly comprehend “the way Jesus exercised His kingly authority on earth”? Are we embracing as the core of truth the love and obedience revealed by the cross? God’s Kingdom does not advance by force or cunning but through willing sacrifice, service, and the work of the Holy Spirit. This stands in stark contrast to Barabbas, who relied on violence and rebellion.

For believers to emulate Jesus standing before Pilate means that even if we suffer ridicule, slander, or injustice, we still obey God’s will and persist in truth and love. Moreover, when worldly authorities question, “What is this kingdom you claim?” or “Who is this king you speak of?” we should respond, as Jesus did, with courage and clarity: “My kingdom is not of this world, and our true Sovereign is Jesus Christ, the King of truth.” We must proclaim this testimony in the world. Such a confession should not end with words but must manifest in the humility, gentleness, love, and self-sacrifice that Jesus Himself exemplified.

Particularly in his teaching on Pilate’s interrogation, Pastor David Jang underscores the atoning nature of Jesus bearing all sin and false judgments on Himself. Jesus, declared innocent even by Pilate, never once sinned. Yet by dying on the cross, He took upon Himself the punishment our sins deserved, opening the way for us to be set free. If Jesus had been guilty, the cross would not have been an act of atonement. But the sinless One, by dying, assumed the burden of our sins. This is the transcendent love of God—Christ’s self-sacrifice in the flesh. In his sermons, Pastor David Jang frequently notes, “Jesus stood in that court, under the world’s judgment, so that we would not have to face the judgment for our sins.” For the Christian, to believe is to receive this love and salvation, then to emulate Christ’s way of love.

In our daily lives, how do we see Jesus’ kingship come into tension with worldly power? Often, it doesn’t take the form of grand political persecution or official trials, but appears in pressure to compromise or reject truth for the sake of personal gain, whether in workplaces, schools, or ordinary social interactions. Christians must refuse to adopt the world’s methods of lying or trampling on the weak for self-advancement. Sometimes, we may face unjust accusations and hostility. Yet we are called to respond, as Jesus did, with unwavering love and gentleness. This path is not easy, but it is the path of the cross that Jesus walked. Pastor David Jang reiterates, “If we hold onto Jesus’ truth in a world that shouts, ‘Jesus is not King, there is no truth,’ we may experience suffering. But at the end of that road, we will share in the glory of the resurrection and eternal life in God’s Kingdom.”

We must also recognize that the attitudes of Pilate and the Jewish religious leaders can emerge within our own churches. It is possible for a church to be preoccupied with flashy worship services, programs, or numerical growth while neglecting genuine truth and love. Outwardly shouting “Lord, Lord” (Matthew 7:21), such a church may, in effect, be crucifying Jesus all over again. This is a sobering reality. Pilate heard Jesus say He came “to testify to the truth,” yet he did not comprehend who that Truth was—nor did he genuinely seek to know. In the end, despite wanting to release Jesus, his political calculations won out, and he delivered the innocent man to be crucified. The Jewish leaders similarly displayed strict adherence to the Law in outward form, but they rejected the true heart of God revealed by Jesus.

These episodes highlight how injustice, hostility toward truth, and religious pretense operate within worldly power structures—while also showing how Jesus fulfills genuine truth and love in their midst. Pastor David Jang contends that “we stand daily in Pilate’s courtroom,” facing the question, “What is truth?” and “Which king do you serve?” The believer’s answer must be, “I belong to the truth. I listen to Jesus’ voice, for He is my King.” And this confession must be backed up by our manner of life—in our churches, our communities, and the larger world—where we enact Jesus’ truth and love.

In Pilate’s interrogation, we witness both Jesus’ innocence and His kingship of truth. Meanwhile, we see that the Jewish religious elite and Pilate, through false accusations, fear, and selfish desires, played a part in crucifying Him. Yet it was through this crucifixion that God’s plan of salvation was accomplished. Jesus died on the cross and rose again, overcoming death and declaring the eternal Kingdom of God. Hence, true authority, the true King, is revealed. Those who follow this King, Jesus, discover the truth that Pilate could not grasp, and they enter into life that overcomes sin and death.

For Christians, this passage reminds us that we are “in the world but not of the world.” We must devote ourselves to living out the truth of Jesus, who came to testify to it. As Pastor David Jang often observes, even now, many ask, “What is truth?” without ever coming to Jesus Himself, who is the embodiment of truth. Likewise, churches sometimes compromise with worldly power, becoming like those Jewish leaders who rejected Jesus long ago. Therefore, we must remain in God’s Word and Spirit, walking closely with the Lord, boldly declaring before worldly authorities, “My kingdom is not of this world.” This does not mean fleeing the world but rather maintaining our heavenly citizenship as we influence society with the Gospel and illuminate it with God’s truth.

Pilate’s interrogation thus stands as the moment where Jesus testifies that He is the King of truth, while Pilate and the Jewish leaders, by rejecting that truth, stand condemned by their own actions. Ultimately, Jesus’ cross fulfilled the divine plan of redemption and granted us the path to truly know the truth and be set free. Hence, “Everyone who is of the truth hears My voice” remains a call for us to embrace Jesus as the King in our lives, just as Pastor David Jang consistently exhorts. By following our King, we must humbly proclaim and practice the Gospel in the midst of the world, so that those who ask, “What is truth?” might move beyond the question to discover that the Truth is Jesus Christ. This is the powerful message and mission we inherit today from the account of Jesus standing trial before Pil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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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luz de la verdad – Pastor David Jang


1. La verdad y la autoridad que se revelan en el interrogatorio de Pilato

La escena en la que Jesús comparece ante Pilato para ser interrogado se describe de manera concreta en el Evangelio de Juan, desde la segunda mitad del capítulo 18 hasta el inicio del capítulo 19. Este pasaje se ubica en la parte final de la vida pública de Jesús, justo antes de su crucifixión, y constituye un acontecimiento de gran relevancia tanto en el plano dramático como en el teológico. El texto muestra a Jesús, después de haber sido apresado y sometido al juicio religioso de los sumos sacerdotes y los líderes judíos, presentándose ante el gobernador romano, Pilato. Especialmente en el proceso de interrogatorio de Pilato, las palabras y la actitud de Jesús, así como la reacción de Pilato, revelan de manera contundente qué es la verdad. Al mismo tiempo, este episodio deja al descubierto el pecado de los sumos sacerdotes y líderes religiosos judíos, así como la perversa psicología colectiva de la multitud que exigía la muerte de Jesús.

Cuando Jesús compareció ante Pilato, ya había sido detenido por los líderes religiosos y sometido a un interrogatorio nocturno. Finalmente, se le acusó de blasfemia por proclamarse “Hijo de Dios”. Sin embargo, los judíos no podían ejecutar la pena de muerte con base únicamente en sus propias leyes o costumbres religiosas (Jn 18:31), de modo que llevaron a Jesús ante el gobernador romano Pilato con el fin de obtener una condena a muerte. Puesto que Pilato ejercía el poder delegado por el Imperio romano para gobernar Jerusalén y sus alrededores, se requería su autorización para llevar a cabo una ejecución en territorio judío.

En ese contexto, la primera pregunta de Pilato al encontrarse con Jesús fue: “¿Eres tú el rey de los judíos?” (Jn 18:33). Esto se debía a que los líderes judíos habían transformado la acusación religiosa de Jesús —autoproclamarse Hijo de Dios— en una acusación política de sedición, alegando que Jesús se declaraba “Rey de los judíos” en oposición a Roma. Sin embargo, la respuesta de Jesús deja claro que Él no es un rey terrenal ni ostenta un poder político de esta época. Jesús afirma rotundamente: “Mi reino no es de este mundo” (Jn 18:36), enfatizando que no busca un trono dentro de la estructura política romana o dentro del sistema político que los judíos imaginaban, ni tampoco ejercer su dominio por la fuerza. Para Pilato, esta aclaración resultaba de suma importancia. Como gobernador romano, él estaba particularmente alerta ante la posibilidad de que surgiera algún rebelde con intenciones de amenazar la estabilidad del Imperio. Pero Jesús deja en claro que Su Reino no se inscribe en el ámbito político o en el poder secular donde operaba Pilato.

Las palabras de Jesús adquieren un sentido profundo en dos dimensiones. En primer lugar, el Reino de Jesús es el Reino eterno de Dios, un reino donde se cumple el gobierno de la verdad y del amor. No se basa en fuerzas militares ni estructuras políticas de este mundo, sino que libera al ser humano del poder del pecado y de la muerte, ofreciendo salvación y vida eterna. En segundo lugar, Jesús previó la posibilidad de que Pilato, anclado en la idea de “Rey de los judíos”, lo calificara como un rebelde. Por eso, le explica que, si realmente tuviera seguidores dispuestos a combatir contra el Imperio romano, ya habrían luchado para impedir Su entrega a los judíos (Jn 18:36). Con esta afirmación, Jesús deja claro que Su Reino es esencialmente distinto de los reinos terrenales, que se consolidan y se expanden mediante la violencia, y subraya que no guarda relación alguna con la imagen de un rebelde político.

Ante esta explicación, Pilato vuelve a insistir: “¿Luego, tú eres rey?” (Jn 18:37). Con esta pregunta, Pilato indaga si Jesús realmente se considera poseedor de un poder real. Tal vez Pilato no comprendía a cabalidad en qué consistía ese “otro reino” al que Jesús aludía, pero al escucharlo debió captar que ante él no se hallaba un simple delincuente político, sino alguien que poseía un tipo de autoridad y de verdad completamente distinto. La respuesta de Jesús es contundente: “Tú dices que soy rey. Yo para esto he nacido, y para esto he venido al mundo: para dar testimonio de la verdad. Todo aquel que es de la verdad, oye mi voz” (Jn 18:37). Así, Jesús se proclama a sí mismo como la Verdad y señala que Su propósito al venir al mundo es testificar de ella; además, destaca que solo aquellos “que son de la verdad” pueden escuchar Su voz.

La declaración “Todo aquel que es de la verdad, oye mi voz” encierra un principio teológico y espiritual esencial. No importa cuánta educación haya recibido una persona, ni su posición religiosa o su poder político; si no conoce la verdad, no podrá entender la voz de Jesús. Por otro lado, cualquiera que reciba con humildad la iluminación del Espíritu Santo y busque la verdad, sea el gobernador romano o sea un habitante de la periferia de Galilea, podrá reconocer en las palabras de Jesús la “verdad de un Rey”. Pero, según el relato de Juan, Pilato respondió: “¿Qué es la verdad?” (Jn 18:38), y no esperó una respuesta por parte de Jesús. Este detalle deja entrever que Pilato no estaba genuinamente interesado en la verdad, o que simplemente no tenía tiempo ni disposición para buscarla, característico de un político preocupado más por la conveniencia inmediata que por la veracidad profunda.

Enseguida, Pilato declara en dos ocasiones ante la multitud judía: “Yo no hallo en él ningún delito” (Jn 18:38). Desde su perspectiva, no existía motivo para sentenciar a Jesús a la pena capital. Además, es probable que, al escuchar de primera mano las palabras de Jesús, Pilato intuyera algo de la dignidad y pureza de su persona. El hecho mismo de proclamar públicamente que no encontraba culpa alguna en Jesús refleja esa impresión. Pero los líderes religiosos y la muchedumbre judía seguían exigiendo con insistencia la ejecución de Jesús y pidieron en su lugar la liberación de Barrabás, un criminal infame (Jn 18:40). Barrabás era ladrón, agitador de motines y asesino (Mc 15:7; Lc 23:19; Hch 3:14). Para Roma, se trataba sin duda de un reo merecedor de la pena de muerte. No obstante, los líderes religiosos judíos, presionando a Pilato, siguieron atizando a la multitud para que el juicio desembocara en la ejecución de Jesú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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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esar de que Pilato deseaba liberar a Jesús por considerarlo inocente, cedió finalmente ante la presión popular y sus cálculos políticos, sobre todo cuando lo amenazaron diciendo: “Si dejas ir a ese, no eres amigo del César” (Jn 19:12). Así que hizo azotar a Jesús, con la esperanza de calmar de alguna manera la furia del pueblo (Jn 19:1). Después, permitió que lo vistieran con un manto púrpura y le colocaran en la cabeza una corona tejida de espinas, para mofarse de Él (Jn 19:2–3). Tal vez Pilato pensaba que, tras esta burla y vejación, la multitud se daría por satisfecha y le permitiría exonerar a Jesús. Pero aquello solo encendió más la rabia popular que clamaba: “¡Crucifícalo!”.

Así, el interrogatorio de Pilato, por un lado, muestra que incluso un gobernante terrenal reconoció la inocencia de Jesús; y, por otro lado, pone en evidencia la paradoja de que, siendo Jesús inocente, acaba siendo condenado a muerte debido a la maldad, la hipocresía religiosa y la conveniencia política de los hombres. Aun cuando Pilato proclamó tres veces “No hallo en él ningún delito” (Jn 18:38; 19:4; 19:6), terminó por entregarlo a la crucifixión. Juan aprovecha este momento para mostrar que, si bien Jesús murió injustamente, ese sufrimiento formaba parte del plan divino de redención.

Las ideas centrales que emergen de esta escena del Evangelio de Juan son, en primer lugar, la absoluta inocencia de Jesús. Queda demostrado de manera histórica que ni siquiera el gobernador romano encontró en Él culpa alguna. En segundo lugar, se deja claro que Jesús no era un rebelde político ni un rey de este mundo, sino el Rey de la verdad y el Gobernante del Reino de Dios. La frase “Mi reino no es de este mundo” es una referencia clave para la identidad del creyente, al mostrar que su pertenencia espiritual no se funda en lo meramente terrenal. En tercer lugar, surge la paradoja de que la Verdad es rechazada por un poder religioso falso y un pacto político interesado. Los líderes religiosos judíos proclamaban adorar a Dios y esperar al Mesías, pero cuando el Mesías se presentó, lo rechazaron para salvaguardar su estatus y poder, participando en la condena del Hijo de Dios. Así, este pasaje ilustra que, cuando la Verdad se hace presente, la falsedad y la hipocresía quedan expuestas y terminan siendo juzgadas.

El pastor David Jang, al reflexionar sobre la figura de Jesús delante de Pilato, enfatiza que es imprescindible meditar profundamente sobre la orientación y la actitud que debe tomar nuestra fe cristiana. En especial, a la luz de las palabras de Jesús —“He venido al mundo para dar testimonio de la verdad”—, señala la importancia de reflexionar sobre la postura que adopta la iglesia de hoy ante las autoridades terrenales. El pastor David Jang suele hablar del concepto de “la autoridad real de la verdad de Jesús”, no con la intención de enfrentar o contraponerse a los poderes del mundo, sino con la intención de reconocer la condición de Jesús como “Rey que da vida” a una humanidad corrompida por el pecado, la muerte y el engaño. Quienes no pertenecen a la verdad no pueden escuchar la voz de Jesús y, por ende, acaban sometiéndose o aprovechándose del poder mundano para satisfacer sus propias ambiciones. En cambio, quienes sí pertenecen a la verdad, es decir, aquellos que reconocen a Jesús como Rey, deben imitar la actitud de Cristo, quien “siendo Su Reino diferente al de este mundo, se encarnó en él para proclamar la verdad”.

Así, el interrogatorio ante Pilato condensa tanto la inocencia de Jesús como el proceso mediante el cual, a pesar de todo, Él aceptó el sufrimiento y se encaminó hacia la cruz para cumplir la redención. Al meditar en este pasaje, los cristianos advertimos que la verdad enseñada por Jesús —amor, perdón y certeza del Reino de Dios— es de un orden completamente distinto al de los poderosos y líderes religiosos de este mundo. Del mismo modo que el mundo no reconoció a Jesús, hoy día muchos tampoco quieren oír la verdadera voz del Evangelio e incluso lo rechazan. Aun así, Jesús se mantuvo firme proclamando la verdad hasta la muerte en la cruz. Aquella aparente locura divina fue, en realidad, el camino para la salvación de la humanidad. Por eso, la silenciosa y majestuosa actitud de Jesús ante Pilato encierra también el germen de la victoria que se vería probada con la resurrección.

En consecuencia, el interrogatorio de Pilato muestra cómo el camino del cristiano se distingue del poder terrenal. Normalmente, la autoridad del mundo se erige y perpetúa por la fuerza, la coacción, la maniobra política, el poderío militar o el económico, como lo ilustra el Imperio romano en tiempos de Jesús. Pero el “Reino de Dios” que manifiesta Jesús aparenta ser débil y fracasar, llegando incluso a la ignominia de la cruz, si bien allí se revela la fuerza del poder de la resurrección y de la vida eterna. Y eso es precisamente lo que Juan destaca como la “autoridad real de la verdad” de Jesús.


2. La tensión entre los poderes del mundo y el Reino de Dios

La afirmación de Jesús: “Mi reino no es de este mundo” (Jn 18:36) ha suscitado a lo largo de la historia múltiples interpretaciones y debates. En ciertas épocas, se utilizó este pasaje para justificar una separación radical entre la Iglesia y el mundo. En otras, algunos interpretaron que transformar políticamente las estructuras de la sociedad equivale a la expansión del Reino de Dios y abogaron por la participación activa en política y economía. Sin embargo, en el contexto de este relato, la frase “Mi reino no es de este mundo” significa que Jesús se presenta como un rey que trasciende los intereses políticos de Pilato y las concepciones religiosas de los líderes judíos. Los objetivos y métodos de Jesús se fundamentan en una verdad que el mundo no puede comprender ni imitar. Los poderes de este mundo suelen instrumentalizar la religión y la verdad para beneficio propio, mientras que Jesús declara: “Todo aquel que es de la verdad, oye mi voz”, subrayando que esta verdad no se relaciona con la posición social o la influencia de una persona.

La tensión entre la verdad y el poder terrenal se muestra en todo el Evangelio. Jesús, durante su ministerio, se enfrentó continuamente a la autoridad religiosa y, al final, pasó por el juicio del poder secular representado en Pilato, que lo condenó a morir crucificado. No obstante, de forma paradójica, Pilato —quien lo sentenció— confiesa hasta en tres ocasiones que no hallaba falta alguna en Él. Así se demuestra que, aun en el tribunal de un gobernador romano, la pureza y la inocencia de Jesús se hacen evidentes. Aun así, Jesús no se defendió mediante maniobras políticas o el uso de la violencia, sino que permaneció en silencio, soportando el azote y la burla. De esta forma, se destaca la naturaleza totalmente distinta del reinado de Jesús, que no persigue imponer su poder con estrategias mundanas.

¿Por qué los líderes judíos y la multitud insistieron tanto en matar a Jesús? Porque Él desenmascaró su hipocresía y su abuso de poder, así como las estructuras opresoras del templo. Ante los ojos de esos dirigentes, Jesús era una amenaza para su estatus y su autoridad religiosa. Resolvieron entonces recurrir a la calumnia —“Él se rebela contra Roma”— y a la presión multitudinaria ante Pilato para forzar una sentencia de crucifixión. Aparentemente, decían servir a Dios con celo, pero rechazaban al verdadero Mesías y obraban en contra de Él. Todo esto confirma lo que Jesús había anunciado: que ellos no pertenecían a la verdad y, por ende, no podían reconocerla. Pilato, aun preguntándose “¿Qué es la verdad?”, tenía ante sí a la Verdad encarnada, pero no la supo —o no la quiso— identificar. Por su parte, Jesús asumió, por encima de toda la maldad humana, el plan salvador del Padre, dirigiéndose libremente a la cruz.

Esta escena ha generado debates en torno a la responsabilidad última de la muerte de Jesús, discutiendo la culpa de Pilato y de los líderes judíos. Pero los Evangelios muestran que la muerte de Jesús no fue el resultado de una conspiración meramente humana, sino parte del plan de redención para expiar los pecados de la humanidad. Jesús, aun siendo inocente, murió para cargar con la culpa de los pecadores y abrirles un camino de salvación. Pilato y los líderes judíos se convirtieron en instrumentos de ese plan, sin que ello signifique que queden exentos de culpabilidad. En realidad, todos los seres humanos compartimos el mismo pecado que crucificó a Jesús: nuestros propios intereses, temores y maldad contribuyen a rechazar a Dios.

El pastor David Jang enfatiza la importancia de aplicar las reflexiones que surgen de la confrontación entre Jesús y Pilato a la vida de la Iglesia y de los creyentes de hoy. Según su enseñanza, Jesús sigue “dando testimonio de la verdad”, pero la cuestión es si la Iglesia y los cristianos se alinean con esa verdad o si, por el contrario, se acomodan a los poderes terrenales y la ignoran. Existe el riesgo de que en la Iglesia se repitan actitudes similares a las de los líderes judíos, quienes rechazaron a Jesús para proteger sus privilegios y su comodidad, aunque presumían de religión. Cuando los intereses materiales, el prestigio institucional o el deseo de conservar el poder eclesiástico eclipsan la esencia del Evangelio, se acaba rechazando la verdad de la cruz, a la vez que se mantiene una apariencia de religiosidad. El pastor David Jang advierte a la Iglesia sobre este peligro y recalca que “la autoridad de la verdad de Jesús” no es para derrocar violentamente al mundo, sino para amar, servir y salvar a los pecadores sumidos en las tinieblas.

La elección de liberar a Barrabás en lugar de a Jesús también dice mucho sobre la sociedad. En ocasiones, los grupos multitudinarios se sienten atraídos por figuras que prometen cambios bruscos y violentos, pues esas acciones radicales pueden despertar un sentimiento de venganza o de “justicia” distorsionada. Barrabás, como agitador de revueltas y asesino, podía prometer una sublevación contra Roma, algo que a muchos les parecía más “práctico” para saciar su enojo. Pero Jesús no transforma el mundo por la fuerza de las armas. El Reino del que Él es Rey consiste en el gobierno del Padre que llega mediante el poder del Espíritu Santo. En la cruz, la imagen de Jesús parece derrotada y humillada; sin embargo, con la resurrección se revela el Rey que triunfa sobre la muerte. Quienes permanecen en Jesús están llamados a transitar un camino distinto al de la mayoría. El pastor David Jang, al mencionar constantemente este tema, hace referencia a las palabras del apóstol Pablo: “Porque nuestra lucha no es contra sangre y carne, sino contra principados, contra potestades, contra los gobernantes de las tinieblas de este mundo” (Ef 6:12). El Reino de Dios no se establece mediante rivalidades políticas o conquistas militares, sino mediante el poder del Espíritu y la práctica del amor y la verdad.

Ahora bien, “Mi reino no es de este mundo” no significa que los cristianos deban aislarse por completo de la sociedad. En otros pasajes de Juan, Jesús ora por Sus discípulos diciendo: “No ruego que los quites del mundo, sino que los guardes del mal” (Jn 17:15). Esto expresa que debemos vivir en el mundo, pero sin contaminarnos con los valores de este. Asimismo, declara: “Como me envió el Padre, así también yo os envío a vosotros” (Jn 20:21). Es decir, los creyentes, como ciudadanos del Reino de Dios, somos enviados al mundo para anunciar el Evangelio y difundir la luz de la verdad. El pastor David Jang insiste en que si los discípulos de Jesús se refugiaran en una burbuja apartada de la sociedad, la obra de la cruz quedaría desvirtuada. Debemos vivir en santidad y separados del mal, pero a la vez hemos de cumplir la misión de proclamar la verdad y el amor divino en medio de la sociedad.

No obstante, reconocer y aferrarse a la verdad puede resultar muy difícil, pese a que parezca algo obvio para la Iglesia. Los dirigentes judíos se jactaban de cumplir la Ley de Dios y de esperar al Mesías, pero no lo reconocieron al tenerlo frente a sus ojos. Es más, lo atacaron, lo calumniaron y lo condenaron. Porque la verdad que Jesús proclamaba sacaba a la luz su hipocresía y su corrupción. Lo mismo puede ocurrir hoy. Cuando la Iglesia se instala en un simple ritualismo, se deja seducir por las ventajas mundanas y no vive conforme al Evangelio de la cruz, corre el riesgo de volverse insensible a la voz de Jesús. Entonces, repetiremos la postura de Pilato, preguntando “¿Qué es la verdad?” y pasando por alto que la Verdad está frente a nosotros.

Por ello, el pastor David Jang hace un llamado a la Iglesia a examinarse continuamente y regresar a la esencia del Evangelio. El interrogatorio de Jesús ante Pilato nos confronta con la pregunta: “¿A qué rey pertenecemos?”. Si nos dejamos llevar por la influencia, la fama, la ambición económica o la comodidad, podemos terminar ignorando la voz del verdadero Rey. ¿Comprendemos de veras el modo en que Jesús ejerce Su reinado aquí en la tierra? El pastor David Jang subraya que el centro de la verdad está en la cruz, manifestando amor y obediencia. El Reino se expande no por maniobras o fuerza, sino a través del sacrificio voluntario, del servicio y de la obra del Espíritu Santo. En esto radica la diferencia fundamental con quienes, como Barrabás, pretendían derrocar el orden establecido mediante la violencia.

En el presente, para un cristiano, imitar a Jesús ante el tribunal de Pilato implica la disposición a sufrir el menosprecio, la burla e incluso acusaciones falsas. Significa, además, permanecer fiel a la voluntad del Padre y a la verdad y el amor, tal como hizo Jesús. Cuando los poderes de este mundo pregunten “¿Cuál es vuestro reino?” o “¿Quién es vuestro Rey?”, el creyente deberá responder con valentía y claridad: “Mi reino no es de este mundo. Reconozco a Jesucristo como el Rey de la Verdad”. Y esta confesión no debe quedarse en palabras; debe reflejarse en una vida marcada por la humildad, la mansedumbre, el amor y el sacrificio, tal como lo enseñó Jesús.

El pastor David Jang también destaca el aspecto sustitutivo de la pasión de Jesús en el interrogatorio de Pilato. Jesús fue declarado inocente hasta por el propio Pilato, nunca cometió pecado. Sin embargo, murió en la cruz para que nosotros, culpables ante Dios, fuésemos liberados de la condena. Si Jesús hubiera sido culpable de algo, la cruz no tendría un carácter expiatorio. Pero al ser totalmente inocente y aun así recibir la sentencia de muerte, cargó con nuestro pecado para otorgarnos salvación. Esta realidad demuestra el amor extraordinario de Dios y la entrega absoluta de Cristo encarnado. David Jang explica con frecuencia que “Jesús compareció ante el tribunal terrenal en lugar nuestro, para que nosotros no fuéramos juzgados por el pecado”. Ser cristiano significa creer y acoger ese amor, y vivir de la misma manera: sirviendo y amando, en obediencia al Padre.

Quizá hoy no enfrentemos un interrogatorio político como el de Pilato, pero a diario nos vemos expuestos a presiones y tentaciones que nos incitan a apartarnos de la verdad para buscar beneficio propio. En nuestros trabajos, escuelas o situaciones cotidianas, se nos invita a falsificar, corromper o pisotear al más débil para avanzar. Allí es donde el cristiano debe rechazar las prácticas del mundo y optar por la verdad de Jesús, aun si eso trae desprecio o sufrimiento. Seguir el camino de la cruz no es sencillo, pero al final está la victoria de la resurrección y la participación en la gloria del Reino de Dios. El pastor David Jang subraya: “Si el mundo grita que Jesús no es Rey y que la verdad no existe, perseverar en la verdad conllevará un costo. Pero en esa senda de fe, participaremos en la vida eterna y en el triunfo de Cristo resucitado”.

Además, debemos reconocer que los comportamientos de Pilato y los líderes religiosos podrían reproducirse dentro de la propia Iglesia. Es posible que una comunidad eclesial se concentre en servicios espectaculares, proyectos ostentosos o en crecer numéricamente, descuidando la verdad y el amor. Entonces, aunque en lo externo repita “Señor, Señor” (Mt 7:21), en la práctica puede estar crucificando de nuevo a Jesús. Eso es algo verdaderamente grave. Pilato oyó que Jesús venía “a dar testimonio de la verdad” y, pese a tener la intención de liberarlo, sucumbió a los gritos del populacho y a sus cálculos políticos, sellando el destino de Jesús. Los líderes judíos se jactaban de cumplir con meticulosidad la Ley, pero ignoraron el auténtico corazón de Dios revelado por Jesús.

Esta historia explica cómo funciona la injusticia del poder en el mundo, cómo se rechaza la verdad y cómo la hipocresía religiosa puede aliarse con el poder para crucificar al justo. A la vez, muestra la manera en que Jesús encarna plenamente la verdad y el amor, abrazando la cruz para llevar a cabo la salvación. El pastor David Jang sostiene que debemos tener presente que “cada día comparecemos, en cierto sentido, ante la pregunta de Pilato”. “¿Qué es la verdad?”, “¿A cuál rey perteneces?”. El cristiano debe responder: “Pertenezco a la verdad; escucho y sigo la voz de Jesús, quien es mi Rey”. Y esa respuesta debe manifestarse en la práctica diaria, tanto en la iglesia como en la sociedad, mediante acciones concretas de amor y obediencia a la verdad.

Al contemplar el interrogatorio de Pilato, somos testigos de la inocencia de Jesús y de su realeza cimentada en la verdad. Observamos, asimismo, cómo los líderes judíos y Pilato, empujados por el engaño, el temor y la codicia, lo llevan a la cruz. Sin embargo, constatamos que la cruz era el medio divino para nuestra redención. Jesús muere crucificado, mas al resucitar vence la muerte y establece el Reino eterno de Dios, revelando que Él es el Rey verdadero. Aquellos que lo reconocen como Rey se adentran en la verdad que Pilato no pudo comprender, y participan de la vida que vence al pecado y a la muerte.

Para el creyente, este pasaje de Juan subraya la identidad de “estar en el mundo sin ser del mundo”. El pastor David Jang reitera que Cristo sigue dando testimonio de la verdad, pero muchos todavía preguntan “¿Qué es la verdad?” sin acercarse al Jesús que tienen frente a ellos. Y, lamentablemente, a veces la Iglesia se alía con el poder terrenal y rechaza a Jesús, tal como hicieron los antiguos líderes judíos. Por lo tanto, debemos caminar cada día en la Palabra y en el Espíritu, testificando con firmeza: “Mi reino no es de este mundo”. Esto no implica huir del mundo, sino ejercer la ciudadanía del cielo sin dejarnos doblegar por sus valores. Al contrario, estamos llamados a iluminar al mundo con el Evangelio, fomentando una verdadera transformación.

Finalmente, el interrogatorio ante Pilato constituye el momento en que Jesús mismo declara que es el Rey de la Verdad, mientras Pilato y los líderes judíos rechazan esa verdad, quedando al descubierto su propio pecado. Y, sin embargo, esa cruz, que representa el rechazo y la muerte de Jesús, fue el instrumento divino para concretar el plan de salvación. Hoy, gracias a la muerte y resurrección de Cristo, comprendemos que solo aquellos que le pertenecen a Él, la Verdad, pueden hallar la libertad y la vida. Por tanto, aferrémonos a las palabras de Jesús: “Todo aquel que es de la verdad, oye mi voz”, y, tal como insta el pastor David Jang, proclamemos con nuestra vida que Jesús es el Rey. Sigamos Su ejemplo de mansedumbre y obediencia para proclamar el Evangelio en medio de este mundo. De esa manera, ayudaremos a que muchos dejen de preguntarse en vano “¿Qué es la verdad?”, y descubran finalmente que la Verdad es Jesucristo. Esa es la poderosa enseñanza y el desafío que recibimos hoy al contemplar este pasaje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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